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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10. 2023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애거서 크리스티, 황금가지)

독서노트 _22

무려 8백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이 책을 조금씩 조금씩 읽어 결국 다 읽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녀 작품의 광팬이라면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도 응당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부합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자서전은 그녀의 일생의 흐름을 쭉 따라가기는 하지만 중간중간 현 세태(라고 해봤자 그녀가 그 글을 쓰던 시기인 1960년대이다)에 대한 나름의 의견 표명도 있고, 이런저런 회상과 추억도 뒤섞여 있어서 마치 그녀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 어느 저택에 사는 나이든 노처녀 할머니의 오래된 옷장 속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즐거웠던 점도 그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적이고 풍요롭던 영국 시골마을의 생활과 정서를 이 책을 통해 매우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옷감을 아끼지 않은 옷들, 대가족이 한꺼번에 식사하기에 넉넉한 음식, 다양한 음식 종류, 사교계 데뷔와 무도회, 집집마다 있던 하녀와 집사, 요리사, 유모와 집안 식구들과의 흥미로운 관계(대체 이들은 이 많은 고용인들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각양각색의 이웃과 많은 친척들..정말이지 그 시대를 다룬 어떤 영화를 보는 것보다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책의 상당부분은 이러한 내용을 기술하는 데에 할애되어 있는데, 너무나 재밌어서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두 탐정(푸아로와 마플 양)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그녀의 처녀작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어떻게 쓰여졌는지, 그 외에도 그녀의 수많은 히트작과 등장인물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가 책 곳곳에 나오는데 그녀 추리소설의 애독자라면 그중 어느 한 부분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읽다보면 그녀는 창작의 고통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술을 꽤나 즐기며 나름 수월하게 해낸 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글을 써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질투가 나기도 했다. 단편소설 한 권 쓰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장편을, 그것도 온갖 트릭을 숨겨야 하는 추리소설을 즐기면서 쓸 수 있었을까.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히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궁금증(그녀는 두 번 결혼을 했는데 어쩌다 그리 됐는지 등) 역시 이 책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고,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적인 면모가 훅 다가왔달까. 중간중간 삽입된 예전 사진이나 그녀가 거처했던 자택 사진들도 책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데에 한몫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제 우리집에 빼곡히 꽂혀 있는 그녀 소설들에 대해 뭔가 마땅한 경의(?)를 표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그녀의 소설들을 읽으면 등장 인물과 배경이 예전보다 더 생생하게 내 눈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그녀의 추리소설만큼이나 읽기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 자서전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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