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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28. 2023

인생의 역사(신형철, 난다)

독서노트 _21

인타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런 문구를 만났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다가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는 게 시에 대한 신형철의 생각이었다. 나는 책의 전반적인 내용도 잘 모른 채 순전히 이 문장에 이끌려 이 책을 샀다.

이 책의 정체를 말하자면 시 평론집이다. 평론이라는 장르와 그리 친하지 않았던 나는 이 책이 그래서 마냥 쉽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중간중간 잘 모르는 외국 시도 끼어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정신과 시를 접하는 자세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확실하였다. 이 시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석이 되는구나, 시인의 의도를 이렇게 숨겨둔 것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나에게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런 감탄의 연속이었다. 책의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옛 시가 공무도하가인데, 사실 여기서부터 나는 작가의 탁월한 분석력과 문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을 쓰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남의 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걸로 업을 삼으려면 이 정도의 연구는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책은 동서양의 각종 시들을 딱딱하게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이런저런 체험을 함께 섞어 엮은 덕에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특히 작가가 가수이자 작곡가인 윤상의 '덕후'임을 고백한 부분에서는 그의 인간다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면 쉽게는 읽히지만 한 번 읽은 후 더는 손이 안 가는 책도 있고, 쉬이 읽히지는 않지만 여운이 남아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마 나에게 후자일 것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과 후의 나는, 아마도 시를 읽는 데에 있어 전과는 다른 내가 되지 않았을까. 관점과 시각을 바꿔주는 책은 찾기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출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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