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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Sep 09. 2023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김민섭, 창비)

독서노트 _36

세종사이버대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이런 이름의 작가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하긴 책이며 작가는 하늘의 별보다 많을 텐데 내가 그들을 다 아는 건 죽는 날까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산 건 세종사이버대 교양과목 중 하나인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강사인 김민섭 교수가 본인이 쓴 이 책을 주교재로 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는 에세이집을 산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올해 초 민근이가 벨마비로 병원에 5일간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탤런트 김혜자의 '생에 감사해'는 내가 읽고 싶어서 산 책이었지만 지금 독서노트를 쓰고 있는 김민섭 작가의 책은 아마 수업이 아니라면 사지 않았을 것이었다.(있는 줄도 몰랐던 책이었으니까) 그러다 이 작가가 내가 제목은 들어 보았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도 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이 책에도 급 관심이 생겨서 서둘러 읽게 됐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 읽을 정도로 책은 어렵지 않게, 쉽고도 다정한 언어로 쓰여 있었고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도 상당했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특히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삶이 쉽지 않고 신산했다면 글을 쓰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가 꽤나 어렵다.(내가 나의 정말 어렵고 어두웠던 시기를 글로 쓰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김민섭 작가는 작가 본인의 말처럼 '연약한 시기'에 대해 적어 나가면서도 침착함과 담담함, 그리고 자아성찰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이런저런 에세이, 그러니까 나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제법 써 왔지만 과연 그 글들에 김민섭 작가가 녹여낸 것과 같은 자아성찰과 자기 연민의 탈피가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자기와 같은 이름의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는 나도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두근거리며 눈가가 따뜻해졌다. 그러다 책은 다음 장에서 느닷없이 작가의 교통사고와 가해자로부터 당한 모욕에 대한 고소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이야기가 김민섭 찾기에서 교통사고와 고소 사건으로 넘어갔을 때 책을 엎어놓고 한동안 읽지 않았다. 읽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일껏 김민섭 찾기로 감동을 고양시켜 놓고는 그 다음 이야기가 고소라니. 이건 마치 다 그린 멋진 그림에 물감을 아무렇게나 뿌려대는 일 아닌가. 나는 잘 그려진 그림을 감상한 듯한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을수도 없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나서 역시 김민섭 작가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가해자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만도, 그런 인간에게서 있는 대로 모욕을 받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변호와 연민만도 아니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선량한 보통 사람들간의 믿음과 연결이 그 에피소드에도 가득 담겨 있었다. 나라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했을까, 글을 쓸 수는 있었을까, 만약 쓴다면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그런 일을 겪은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글이 채워지지 않았을까. 읽는 내내 그동안의 내 글쓰기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브런치에 글을 몇 편 끼적거리는 것 외에는 내 생활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내 생활이란 건 출근-근무-퇴근으로 이어지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고 직장 역시 상상력이나 창의력이라고는 거의 끼어들 여지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글 쓸 소재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정말 아프고 어두웠던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내가 그 시간을 바로 볼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글로 남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내가 갑자기 '그래, 결심했어!'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에세이를 마구 써내려갈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 생활, 내 삶에 대한 글을 다시 쓴다면 어떤 자세로 써야 할 건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게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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