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Sep 03. 2023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문동)

독서노트 _35

이 수상작품집을 다 읽는 데에 몇 달이 걸렸다. 내용이 특별히 어려워서도 아니고 내가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도 아니었다. 다만 책을 거의 다 읽고 마지막 작품인 현호정의 '연필 샌드위치 '만을 남겨놓고서 시를 쓰네 시집을 읽네 하고 다른 일에 정신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책은 식탁 한켠에 놓인 채 꽤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남산공원 둘레길을 걷고 온 오늘 밤, 나는 이 책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책 내용과 남산공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치니 책 속에서 아주 작은 벌레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어렸을 때 집에 있는 오래된 책('햄릿'을 '함레트'라고 표기할 만큼 아주아주 오래된 백과사전 따위)을 열어보면 가끔 보였던 그런 벌레였다. 나 대신 네가 이 책을 읽고 있었구나, 이제 내가 마저 읽을께.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벌레를 왼손으로 눌러 죽인 후 마지막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품을 읽기 전에 읽었던 작품들은 읽은 지 꽤나 오래되어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책 뒤편에 수록된 심사위원들의 평론을 읽으며 내용을 되살려볼 수 있었다. 맞아, 이런 내용이었어. 그렇게 잊혀진 소설 내용을 떠올리며 당시의 짜릿한 감동과 흥미를 반추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한때는 나도 소설이나 동화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설익은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어 소설이라고 끼적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게 내 역량으로 가능한 부분이 아니라는 걸. 나에게는 소설, 그러니까 이야기를 끌고 나갈 만큼의 창의력이 없다. 이야기를 조밀하게 구성할 만큼의 치밀함과 문장력도 부족하다.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묘사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세심함도 별로 없다. 이중 어떤 부분은 노력하면 다소 나아지긴 하겠지만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기에 나는 이제 내 한계를 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럼 소설도 안 읽을 것이냐? 그건 아니다. 물론 나의 흥미와 관심은 아직도 여러 종류의 인문학 서적에 있지만 이제는 소설도 가끔 찾아 읽을만큼 인문학 책에 대한 편식도 사라지고 있다.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책 편식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터. 나는 이제 내가 소설'도' 읽는 사람이라는 것에 꽤나 만족한다. 그리고 그 소설의 목록에 생생한 젊은 작가들의 수상작품집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에도.

매거진의 이전글 특등이 피었습니다(제스혜영 외 2명, 샘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