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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Sep 19. 2023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시요일, 창비)

독서노트 _37

세사대 문창과에 다니면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시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물론 그 전에도 시집을 안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정지용의 시를 좋아해서 시집을 사서 읽었고, 집에는 남편이 사 둔 백석과 천상병의 시집이 있었다.


하지만 시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현대시와 그걸 쓰는 시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주로 에세이나 인문학 서적이었고, 현대시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현학적인 말장난'이라고 여겼다. 시를 읽지 않으니 시에 대한 해석능력이 떨어지고, 그러니 더욱 시를 멀리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세사대에 입학한 후 전공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시 과목도 수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도 수업은 틀어놓기만 하고 딴짓을 했고, 시 창작 과제도 짧게 대충 써서 냈다. 나의 관심은 여전히 시에서는 멀리 있었다. 전문 시인들의 시는 너무나 어려웠고, 이들의 세계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우스운 건, 그러면서도 나는 어설프게나마 시 비슷한 걸 계속 쓰기는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쓴 '몽돌 할매들'은 공직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바로 시에 대한 공부나 열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내멋대로 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무언가를 끼적거리며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세사대 시 동아리인 '시나브로'에 기입하고, 세작교 '시그날'에도 참여하면서 나는 시에 대해 조금씩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를 해석하는 연습도 해 보고, 내 시를 시인과 다른 학우들이 합평해 주는 경험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으로 현대 시인들의 시집도 사서 읽었다. 물론 나의 시 해석 능력은 아직 일천해서, 시나브로 활동 몇 번 하고 시그날에서 시 몇 편 써서 냈다고 현대 시인들의 시를 읽는 대로 척척 해석해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시를 읽고 있으면 뭔가 깊지만 안전하고 따뜻한 바다에서 헤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번에 읽은 시집은 여러 시인들의 사랑에 대한 시를 모아서 엮은 것이다. 사랑에 대한 시라서 쉽게 읽히는 작품도 있지만 여전히 '뭔 말이야..'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좋았고, 읽고 나서는 벅차고 뿌듯했다. 한동안 침대 옆 협탁에 이 책을 놓아두고 틈날 때마다 다시 읽기도 했다. 시는 아직도 어렵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지만, 시를 읽고 공부하고 쓴다는 사실 자체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이 참 좋다.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 목록. 이중에 세사대 교수인 김상혁 시인의 작품이 없다는 건 꽤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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