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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Oct 22. 2023

촉진하는 밤(김소연, 문학과지성사)

독서노트 _38

벌써 몇 번을 되풀이 읽었는지 모른다. 김소연 시인의 신작 시집 '촉진하는 밤'. 세사대 시 동아리 '시나브로'에서 10월에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 해서 일찌감치 책을 샀고 읽기도 여러 번 읽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고 서평을 써서 내야 하는 마지막 순간인 오늘 밤, 나는 거실 한 구석 책상에 놓인 내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서평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전부터 느꼈지만 다른 책에 비해 시집 서평은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물론 시라는 문학 장르가 다른 것에 비해 어렵고 난해하며 다소 뜬구름 잡는 식이어서 그러기도 하겠고, 내가 시를 읽은 구력이 짧아서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기도 할 것이다. 읽을 때는 마음 속으로 시가 잔잔히 젖어들어오는 느낌이 들면서 영혼이 충만해지는 것 같은데, 정작 그걸 글로 옮기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랄까. 물론 읽고 나서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이야' 싶은 시들도 꽤 되긴 한다.


김소연 시인의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읽으면서 참 좋았다. 시를 읽고 있으면 깊고 푸른 밤에 작은 전등만을 켜 놓고 홀로 앉아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시인의 시선은 일상에서의 작은 부분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았으며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것처럼 일상을 분절화하여 모든 것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유를 데워 마시고 잔을 씻어 엎어놓는 행위라든지,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마음이라든지, 모든 것들이 제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하나쯤 있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상을, 매 순간의 마음과 정신을 미세하고 세심한 시각으로 차분히 관찰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가 생일선물을 준 바로 그날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여리고 다정한 사람, 밤의 푸르름에 잠겨 자신을 관조하고 자기 자긴 속으로 잠겨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면. 문득 시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분명 작고 여리면서도 깊고 다정할 그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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