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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Sep 24. 2023

기미, 기미년

나의 시_117

단골 미용실에서 새치 염색을 하던 날

미용사가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말한다

이거 기미 아니에요?

화들짝 놀란 나는 서둘러 대답한다

아닌데요 나는 기미가 없어요


기미가 없다는 나의 말에도

미용사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아니에요 기미 여기 있네

기미가 뭔지 모르는구나

졸지에 나는 머리 하러 온 손님에서

기미가 뭔지도 모르는 여자가 된다


오른쪽 눈 아래쯤에

갈색 점 같은 게 몇 개 생긴지는 꽤 되었다

어느 날은 꽤나 신경쓰이다가

또 어느 날은 잘 보이지도 않던 그것들이

기미가 뭔지도 몰랐던 여자한테 생겼던

기미라는 것이었나 보다


이거 지금은 이 정도지만 나중에 나이 들면

더 올라오고 진해져요 선크림 잘 발라요

미용사의 말을 뒤로 하고 비척거리며 걸어 나오니

거리에는 햇살이 눈부시다, 너 기미 있어 하고 알려주려는 듯이


기미 있다는 말에 선크림을 검색하기 전에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라는 노랫말이 먼저 떠오르는 나는

기미년은 기미가 얼굴에 있는 계집을 말하는 건가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해 보다가

이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을 늦게나마 작은 손으로 가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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