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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Oct 14. 2023

O

나의 시_121

그게 있었다

제가 왜 거기에 있는지

거기서 뭘 해야 하는지

제가 누구인지조차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헤벌린 채

있었다


'묵음'이라고 퉁치는

글자로는 존재하되 소리는 없는

입은 있으되 봉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없는

세상 가장 슬프고 조용한 글자


소리를 내지 못하는 글자

말하지 못하는 입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동그라미인지

숫자 0인지

알파벳 O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무(無)인지

모든 쓸모있는 것들 사이에서

홀로 쓸모없이 웅크린

그게 거기 있었다

아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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