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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01. 2024

남편의 사진

일상기록

2024년 첫 글이다. 한 것도 없이 또 나이를 먹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에 이런저런 변화가 생기는데 그중 두드러지는 것은 사진찍기가 싫어졌다는 거다.


사실 어릴 때부터 사진찍기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원래 그리 이쁜 얼굴도 아니었지만 사진 속 내 얼굴은 거의 항상 어색하거나 실물보다 못나 보여서(어쩌면 그게 내 본 모습일지도..ㅠ) 나는 사진찍을 기회가 있어도 사진 찍어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기기가 도입되고 카메라를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나도 '셀카'라는 것에 조금 맛을 들였다. 그래도 내가 어느 포인트에서 그나마 나아보이는가 하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서, 남(남편 포함)이 찍어주는 사진보다는 내가 스스로를 찍은 셀카가 마음에 들 때가 더 많았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나마 맘에 드는 셀카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셀카조차도 찍지 않게 됐다. 평소에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때는 잘 모르고 있다가 셀카를 찍어보면 내가 나이가 들고 살이 쪘다는 것이 확연히 티가 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진 속 내 얼굴은 참 못나보이고 낯설었지만 그게 바로 나였다. 남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온갖 표정을 다 지어가며, 나름 배경좋은 곳을 골라 찍은 셀카인데도 그 결과물은 자못 실망스러운 적이 여러 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셀카찍기를 그만두었고 그러면서 사진찍는 일 자체가 귀찮아졌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달랐다. 2023년 연말에 3박 4일로 둘이 제주 여행을 다녀오면서 남편은 참 사진을 많이도 찍어댔다. 내가 볼 때는 정말 별것 아닌 것에도 남편은 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에 바빴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몇 장 같이 찍어보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여행 중에 가장 많이 찍은 사진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어디를 가든 남편은 "여기를 봐"라고 하며 나에게 포즈를 취할 것을 권했다. 제아무리 폼을 잡아봤자 사진 속 내 모습이 별로 안 이쁠 것을 아는 나는 그때마다 "귀찮아~"를 반복하며 포즈 취하기를 거부했지만 남편은 포기를 몰랐고 나는 할 수 없이 억지 웃음을 지으며 사진 촬영에 응하곤 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남편이 찍은 영혼없는 내 모습

귀찮다. 그리고 사진 속 내 얼굴은 살찌고 늙고 못생겼다. 그런데도 남편은 어디를 가든 내 사진을 찍는다. 왜 그럴까? 나는 그게 남편의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내 나이 이제 쉰을 바라보고 있고, 결혼한 지 어느덧 22년이 지났지만 남편 눈에는 아직도 내가 결혼 당시의 곱고 이쁘고 날씬하던 모습 그대로인게 아닐까. 그러기에 아직도 그렇게 자꾸 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아직도 나를 그렇게 곱고 이쁘게 봐주는 남편이 새삼 고마워진다. 그리고 나도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을 다시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주 올레길 7코스 트레킹 중 발견한 들꽃. 남편이 먼저 사진을 찍었는데 이 꽃은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흔히 보았던, 참 좋아했던 꽃이다. 남편 덕분에 이 꽃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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