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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01. 2024

건명아 생일 축하해^^♡

일상기록

새해 첫날은 첫날이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큰아들 건명이의 생일이라서 더욱 그 의미가 각별하기도 하다. 1월 1일이 생일인,그래서 더욱 애틋한 나의 큰아들.


건명이를 임신한 줄도 몰랐을 때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주 크고 굵은 백사를 내가 간신히 붙잡고 있었는데 이 백사의 힘이 어찌나 센지 자칫하다가는 놓칠것만 같았다. 백사는 내 손을 벗어나려고 공중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고 나는 이녀석을 놓치면 이게 나를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대로 힘을 짜내어 외쳤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겨우겨우 백사의 목 부분을 붙잡고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백사는 '네가 감히 나를 잡아?'라는 듯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고, 그때 나는 놀라서 퍼뜩 꿈에서 깨어났다. 그 후 병원에 가보니 임신 4주쯤이었다.


임신의 놀라움과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나는 매우 심한 감기에 걸려 열이 심하게 올랐지만 임신 중이라 아무 약도 못 쓰는 채로 고열을 버텨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뱃속 아이는 유산기가 너무 심하니 당장에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이 우리를 도왔는지 나는 감기가 나으며 열이 내렸고, 건명이도 아주 위험하던 임신 초반기를 거쳐 무사히 뱃속에 자리를 잡았다.


건명이의 출산 예정일은 12월 25일이었다. 첫 아이였지만 그리 입덧이 심하지도 않고 몸이 많이 힘들거나 체중이 많이 늘어나지도 않아서(물론 임신 중반기 이후부터 나는 아주 심한 치골통에 시달렸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나는 막달까지 달려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예정일이 다 되었건만 건명이는 나올 기미가 없었고, 의사는 일주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면 유도분만을 통해 새해 첫 아이를 받아보자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출산의 기미가 없는 채로 나는 2006년 12월 31일 밤 10시쯤에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남편과 나는 이것저것 병원 짐을 챙겼는데 그중에는 심심할 때 해보려고 가져간 화투도 있었다. 하여튼 그렇게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병실 티비로 제야의 종 타종식을 보며 2007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유도분만제가 투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배가 조금씩만 살살 아팠을 뿐 여전히 출산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의사는 오후 5시가 좀 넘어서 유도분만제를 끊고 나에게 식사를 하도록 했다. 아이는 내일 낳도록 해보자는 거였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남편과 병실 복도를 슬슬 걷던 나는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뭔가 싸함을 느꼈다. 어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하는 느낌에 나는 급히 분만실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느낌은 맞았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후의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팠고, 너무 아팠고, 무지막지하게 아파서 수시로 기절을 했고 그때마다 간호사가 나를 깨웠던 것 같다. 계속 이렇게 아프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아이 머리가 보인 모양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힘을 주라고, 더 주라고 난리였으나 이미 나는 기진맥진해서 숨쉴 힘도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무슨 기구인지를 가져오라고 한 것 같고 그걸로 아기의 머리를 꺼내어 출산을 도와줬던 것 같다.


그렇게 약 3시간 반만에, 2007년 1월 1일 밤 8시 52분에 키 45cm, 체중 3.01kg의 건명이가 눈을 뜬 채로 세상에 태어났다.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하여튼 누군가가 아이가 아들임을 알려주었고(사실 이미 그 전에 아이 성별은 알고 있었다), 분만대 위에서 조금 쉰 후 나를 병실로 옮겨 주었다. 나는 너무 지쳐 있어서 조금 더 쉬었으면 싶었지만 간호사들도 빨리 분만실을 치우고 쉬고 싶었을 것이므로.


병실까지는 휠체어로 이동했는데 병실 문 앞에 오자 간호사는 나더러 일어나서 침대로 걸어가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걸었나 싶었는데 그 후로 기억이 없다. 그대로 기절한 것이다. 기절했을 때 나는 이상한 꿈 같은 것을 꾸었는데 내가 아주 창백하고 이상한 느낌이 드는, 하얀 빛으로 가득찬 길을 걷고 있었고 누군가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나를 부르는 남편 목소리였다) 나는 돌아보지 말아야지..하며 그냥 계속 길을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강한 힘이 내 입을 벌렸고 나는 이상한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 소동이 있었지만 나는 비교적 나이가 젊었고 또 자연분만이라 상당히 빨리 회복되었다. 건명이가 태어난 2007년은 황금돼지해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벤트가 많았는데 건명이를 낳기 전 가입했던 태아보험 보험사에서 2007년 첫날에 태어난 아이와 산모를 인터뷰하고자 대상자를 찾았고, 대상이 세 명 있었지만 나머지 두 명의 산모는 상태가 좋지 않아 내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보험사 임원이 장미꽃바구니를 들고 왔고, 황금돼지해 첫날 태어난 건명이를 축하하기 위해 황금돼지(다섯 돈)도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이녀석 제 분유값을 벌써 벌었다며 기뻐했었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놀리는 모든 것들이 난제이고 숙제였던 건명이. 아이는 예민하고 까다로웠고 나는 무지하고 서툴렀다. 그 환장의 콜라보(?) 속에서 그래도 건명이는 고맙게도 잘 자라 주었고 나도 엄마로서 한 살 두 살 영글어 갔다. 한때 건명이는 동생 민근이에게 내 사랑과 관심이 더 갈세라 질투하고 노심초사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엄마는 너희를 둘 다 사랑하지만 민근이가 태어나기 전 너랑 나랑 둘만 있었던 시간은 전적으로 우리 둘의 것이라고, 그건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시간이라고. 그렇게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의 기억이 건명이에게 두고두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산후조리원에서의 건명이. 생후 약 10일 정도.
생후 50일 무렵의 사진. 아 이쁘다
생후 6~7개월 무렵. 혼자 앉기 성공
첫돌 이후. 나가기만 히면 뛰었다
중3. 경복궁에서 한복입고 찍은 사진. 호리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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