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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03. 2024

육아휴직을 또 할 수 있다면

일상기록

어젯밤이었다. 큰애 건명이를 쓰담쓰담해주고 있는데 녀석이 말한다.

"엄마, 내일 쉴거지?"

나는 "정말 쉬었으면 좋겠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해 12월 마지막 주를 거의 쉬다시피 하고 나왔기 때문에 너무너무 일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건명이는 다시 말했다.

"엄마, 다시 육아휴직 해"


어제뿐만이 아니라 건명이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에게 다시 육아휴직을 하라고 종용하곤 한다. 밍기도 가끔 그러지만 그보다는 "엄마, 회사는 방학이 없어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건명이는 육아휴직이 이제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꼭 그런 소리를 한다. 나는 그때마다 "너희가 이제 많이 커버려서 안돼"라고 하지만 녀석은 "아니야 엄마, 우리 다섯 살 세 살이야"라고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한다.


두 아이는 모두 내가 공무원이 되기 전, 전업주부일 때 낳고 키웠다. 엄마가 당연히, 늘 집에 있는줄로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공부한다고 종일 나가 있고 집에서도 상 펴놓고 책을 보더니 급기야 다시 직장인이 되어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그때의 놀라움과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때는 하필 건명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바로 그 해였기 때문에 나와 건명이는 각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몹시 고달팠다.

초등 1학년 무렵의 건명이

그러다 나는 갑작스럽게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는데 직장 나가는 나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엄마가 척추뼈 골절을 당해 아이들을 봐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너 육아휴직 쓰면 죽여버린다"라고 했던, 당시 관리계장이라는 자의 망언이 있었지만 나는 약 6개월간 휴직을 했고, 그 후 밍기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한번 더, 1년 육아휴직을 했다.(물론 이때도 내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노여워서 일주일간 나에게 말도 걸지 않던 팀장과, "너는 조국과 민족이 네 애들을 키워줄텐데 왜 애들만 생각하냐"라는 '어록'을 남겼던 과장님을 설득해야 했다)


늘 집에서 자기들을 돌봐주고 모든 것을 같이 하던 엄마가 갑자기 저녁에만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사실에 아이들은 꽤나 힘들어했는데, 그랬던 엄마가 집에 계속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 역시 육아휴직 기간 동안 하루하루가 지나는 게 눈물이 날 정도로 아까웠다. 그 기간 동안의 추억은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이어서, 모르긴 해도 건명이는 아마 지금도 가끔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며 내게 "다시 육아휴직 해"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는 것이리라.

입학식 날의 밍기.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육아휴직 요구를 접은 건명이는 다시 내게 "엄마 내일 집에 있어"라고 떼를 쓴다. 마치 초등학교 때처럼. 내가 다음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에서 가장 먼저 나갈 것임을 알면서도 그런다. 내가 만약 그 다음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루 휴가를 내고 집에 있을 수 있다면, 건명이와 밍기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선물이 될까. "어 엄마 회사 안나갔어?"라며 놀라고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지만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다음 날 입을 옷가지를 미리 챙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이지 육아휴직이 애들 미성년자인 기간 동안 가능하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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