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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04. 2024

10주년

일상기록

꼭 10년 전이다. 2014년 1월 1일,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신규 공무원으로 처음 임용되었던 때.


공무원 시험공부는 2012년 3월경에 시작했고, 나는 그 다음해 6월에 있었던 국가직 7급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2주간의 합숙교육을 받고 2014년 첫날에 작은 시골지역 선관위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금 있는 곳으로 부서도 옮기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7급 필기시험 결과가 발표된 후 5주 정도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하며 면접준비를 나름 열심히 하고서 면접을 보고난 후 최종 결과발표를 기다리던 기간은 괴로움과 초조함 그 자체였다. 면접을 마치고 난 직후에는 제법 괜찮게 봤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불안감은 갈수록 나를 잠식해서 나는 세 명의 면접관 중 인상이 가장 무서웠던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꿈에 나오는 바람에 놀라서 깨기도 했다.


그러다 어찌저찌 합격자 발표날이 되자 도저히 결과발표를 집에 가만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떤 수험생은 밤을 새워가며 술을 진탕 먹고 하루종일 잠들었다가 결과발표가 나온 후 일어나서 결과를 확인하겠다고도 했으나 아이들도 있고 술도 못 마시는 내가 그럴수는 없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그날에 합격자 발표날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엄마와 건명이, 밍기까지 데리고 춘천 가는 기차를 탔다.(당시 남편은 강원도 원주에서 근무중이었다)


춘천 가서 닭갈비를 먹었던가, 아무튼 이것저것 하며 돌아다녔는데도 시간이 좀 남았다. 가족들이 다들 피곤해해서 우리는 한 카페로 들어갔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눈은 자꾸 합격 알림 문자가 올 휴대폰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에 밍기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그때 다섯 살이던 밍기는 화장실 가는 데에 엄마아빠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  차라리 화장실에나 다녀오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밍기를 도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게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밍기를 앉히고 나서 휴대폰을 보니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그거였다. 바로 그 문자였다. 올 것인지 오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없던, 하지만 너무 받고 싶었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약 1년 4개월간 어떻게 생긴 것인지 너무 알고 싶고 궁금했던 바로 그 문자였다.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 최종 합격 사실을 말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눈에 눈물이 글썽하며 "○○야, 사랑한다"하신 건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무뚝뚝하고 애정 표현을 안하시는 엄마가. 그리고나서 사이버 국가고시센터에 아마 합격자 등록을 했던가. 그러고 나면 집으로 이런 증서가 배송이 된다.

5급 합격시에는 합격증서에 대통령 직인이 찍힌다는데 나는 5급이 아니라서 장관 직인이 찍혔다

지금은 이 합격증서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나는 일상에 치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이 늦은 밤 생각해 보니 10년이라는 기간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했다는 것은 제법 칭찬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20년, 30년씩 근속한 사람들의 경력에 비하면 일천하지만, 그리고 나는 공무원이 늦게 되어서 30년 근무는 못하지만 오늘밤, 아니 올해는 10년을 근무한 나를 많이 격려해주고 싶다. 이번 주말엔 10주년 근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조촐한 가족파티라도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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