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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Dec 31. 2023

삶의 마블링

일상기록

나의 작은아들 밍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동차 덕후'이다. 게임도 거의 자동차 운전 게임만 하고, 옷이나 양말도 자동차 관련 회사나 유튜버가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사며 '카밋'이라는, 튜닝 자동차 등을 전시도 하고 시범 운행도 하는 제법 큰 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행사장은 용인 에버랜드 근처에 있어서 그때마다 아빠가 데려가 줘야 하지만)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모터쇼에 참석한 밍기

하지만 이랬던 밍기가 어릴 때에는 자동차 소음이나 세차기계 소리 등을 무서워했던 아이였다는 걸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물론 밍기는 남자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하기는 했다. 그러나 겁이 많은 편이라 실제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내는 소리는 꽤나 무서워했고, 특히 한밤중에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내는 굉음이 들리면 거의 경기하듯 놀라 자지러지게 울곤 했다. (밍기가 울 때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폭주족들을 속으로 얼마나 욕했던지) 그리고 남편이 차에 식구들을 태우고 나들이를 가다가 세차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모두 긴장해야 했다. 세차기계의 위잉 하는 큰 소리와 차창 너머로 달려들듯이 다가오는 세차 솔을 밍기가 너무 무서워해서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큰애 건명이는 와 하나도 안 무섭다~ 하며 밍기의 약을 올리곤 했다)


그랬던 밍기가 자라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동차 덕후가 되어 자동차 행사는 거기가 어디든 참석하고, 유튜브도 주로 자동차에 관련된 것만 보는 아이가 될 거라고는 본인도, 엄마인 나도 생각지 못했다. 밍기는 자동차 유튜브를 보면서 그걸 나에게도 같이 보여주곤 하는데, 내가 그걸 같이 보다가 너 어릴 때 오토바이 소리에 울고 세차기계 소리 무서워하고 그랬는데..하니 자기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며, 그랬던 자기가 지금은 자동차 배기음과 특유의 냄새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예전과 전혀 다른, 상상할 수 없는 현재를 맞고 있는 것이 어디 밍기 뿐일까. 어려서 부모님이 화목한 모습이라곤 본 기억이 없던 나는 자연스럽게 비혼주의자로 자랐고, 몸이 너무 약하고 병치레가 잦아서 이런 '썩은 몸'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혹시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친구들 중에서는 결혼을 가장 일찍 해버렸고, 내 키보다 훌쩍 큰 아들이 둘이다. (어쩌다가 결혼을 일찍 해서 애가 둘이 되었을까? 남편에게 그런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던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건명이 임신 이후 근 8년을 전업주부로 지내는 동안 나는 '내가 전업주부로 살 줄은 몰랐는데'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어 내내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상황이 반전되어 40이 다 된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것도 전혀 생각 못한 일이었다.


2023년을 몇 시간 남겨놓지 않은, 그리고 2024년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나는 밍기와 나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비유하자면 미술 기법 중 '마블링'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물 위에 색색의 유성물감을 띄워 가볍게 저은 후 종이로 찍어내면 그 무늬는 무엇이 나올지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고, 사람마다 같은 무늬가 나오는 법도 없다. 2023년에 나의 마블링은 어땠을까. 그리고 2024년에는 어떤 무늬가 내 삶에 펼쳐질까. 설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두렵기도 한 2023년 마지막 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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