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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25. 2024

어렵고 적응 안되는 일

일상기록

새해가 된 후 한 가지 결심을 해야 했다. 바로 둘째 밍기의 영어 과외선생님에게 수업 종료를 통보하는 일이다.

밍기의 영어 과외쌤은 밍기를 가르친 지 1년 정도 되었다. 원래 영어쌤이었던 여학생이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고, 나는 그 후임을 믿을만했던 큰애 영어쌤에게 알아봐달라고 했다. 큰애 영어쌤은 자기 학과 후배라는 남학생을 소개해 주었고, 나는 큰애 선생님이 소개해 준 사람이니 어련히 알아서 수업을 잘 해주겠거니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믿음에는 균열이 갔다. 이 선생님은 수시로 5분 10분씩 늦었고, 어떤 날은 잠이 들어버려서 연락도 없이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황당한 사유로 수업을 빼먹은 다음 날 그 선생님은 나에게 문자로 손이 발이 되도록 사과했는데, 나는 그 상황이 별로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또 뭔가 우습기도 했고, 나도 대학 때 과외를 해봤던 입장에서 학업과 과외를 병행하는 게 얼마나 피곤했을까 싶어서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선생님이 수업에 늦거나 명확한 이유 없이 수업에 안 오는 일은 꽤 자주 생겼다. 밍기와 선생님이 주고받은 카톡은 거의가 "좀 늦을 것 같아 미안" 이라든가 "오늘 일이 생겨 못 갈것 같아" 따위였다. 게다가 밍기의 말을 들어보니 선생님이 자기에게 문제풀이를 시켜놓고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는 게 아닌가! 모름지기 선생님이라면 아이가 문제를 풀 때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부분에서 헤매거나 망설이는지를 파악해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줘야 하거늘..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밍기에게 "니네 선생님 요즘도 자니?"라고 묻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실 작년에도 선생님을 교체하려고 했던 적은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새로 선생님을 구하는 일도 적잖이 품이 드는 일이었고, 뭣보다 밍기가 선생님과 그대로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하여 그냥 두었다. (밍기와 선생님은 둘 다 키가 크고 말투가 느릿하며 잠이 많다는 점이 똑 닮았다) 그러나 겨울방학 이후 닮은꼴인 스승과 제자는 만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스승이 수시로 수업 일정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저히 더이상 두고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때가 온 것이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잔소리를 단 한 번도 안해서 이 선생님이 우리집이 너무 편해졌나 싶기도 했다. 밍기도 선생님이 좀 심하다 느꼈는지 이번에는 내 말에 동의하였고, 나는 마침내 오늘 칼을 빼들었다.


[선생님, 다름아니라 민근이가 올해 중3이 되고 공부방법을 좀 바꿀 필요가 있어서 그러는데요. 과외수업은 오늘까지만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도 이래저래 바쁘신 것 같기도 하구요. 수업 이번주까지만 진행하고 마무리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럴것같지는 않지만 혹시 수업료 추가입금이 필요하면 연락 주시구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 잠이 많은 선생님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답은 오지 않았다. 도대체 이 인간이 문자를 보기는 한 건가..궁금해하던 차에 남편이 답을 주었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인사하고 갔다고.


아, 그러니까 이 선생님은 내 문자를 보고서도 아무 답을 안한 거였다. 하긴 아무리 우아하고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어도 그 취지는 '너 과외 짤렸음' 일 뿐이니 내 문자가 달가웠을리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1년을 우리집에 들락거렸는데, 그 많은 실수(?)를 내가 그렇게 잔소리 한 번 안 하고 봐주었는데 마지막 인사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마지막 인사 그까이꺼, 하면 어떻고 안하면 또 어떤가. 그는 그대로 그렇게 세상을 살 것이고, 나는 또 새로운 과외선생을 구해야 할 것이고, 그런 것이지 뭐.


2020년 코로나 이후 학교는 무기한으로 못 나가게 되고, 학원도 문을 닫아서 할 수 없이 애들을 과외로 공부시키게 된 지 벌써 4년째이다. 그동안 참 많은 선생님들이 우리집을 거쳐갔지만 선생님을 그만두게 하고 새 선생님을 찾는 일은 늘 어렵고 힘들고 적응 안된다. 3월부터 밍기를 가르칠 선생님은 또 어떻게 찾아야 할까.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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