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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26. 2024

다시 주말부부

일상기록

주말부부를 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부간에 오래 살다보면 서로가 지겨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지기도 할테니, 그렇다고 연애 때처럼 "헤어져!" 하고 호쾌히 뒤돌아서기엔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주말부부라도 해서 합법적으로(?) 떨어져 있는게 낫다는 생각들이 그런 속설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


남편과 나는 11년 전, 2013년에 주말부부였다. 당시 남편이 승진하고 강원도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할 수 없이 떨어져 있게 되었던 거였다. 남편이 발령지로 떠난 때는 1월 초라 정말 추웠다. 그리고 나는 당시 국가직 7급 시험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찌 그 추운 강원도로 근무하러 가는 남편을 혼자 가게 둔단 말인가. 남편은 내가 혼자 서울로 돌아가는 게 안타깝고 싫어서 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서야 남편은 다시 서울로 올 수 있었다.


그랬던 남편은 작년 하반기에 승진을 하고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으며 잘 쉬었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발령일. 나도 남편이 어디로 발령날지 알 수 없어 초조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온 카톡은 황당 그 자체였다. 발령지는 서울과 상당히 먼, 나나 남편 모두 연고 하나 없는 어느 지방 대도시였다.

남편도 이제 이 기념비를 보게 되는 건가

나는 처음에 남편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아니, 농담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고 남편은 도리없이 다음주면 그 지역으로 출근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날려버릴 수가 있지, 그동안 그렇게 뽑아먹고 부려먹더니 정말 너무하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나는 원래 좀 큰일이 생기면 그에 대한 실감을 늦게 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 입학 때도 합격자 발표 다음날이 되어서야 기뻤을 정도였으니) 아마 내가 이 상황이 현실임을 실감했을 때에는 남편은 그 지역 어딘가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해 있을 것이었다.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남편은 주로 티비를 보고 나는 안방에서 책을 보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남편이 거실에 그렇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고 좋았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티비 프로그램을 너무나 재밌게 보며 낄낄대는 남편의 모습이 나는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애들이 남편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그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거나 볼록 나온 배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 가족의 평일 밤은 얼마나 조용하고 적막해질 것인가. 아, 상상하기도 싫다.


이번 주말이 영원히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안된다면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남편 얼굴을 보고 울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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