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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27. 2024

'부재'의 무게

일상기록

남편의 원격지 발령이 확정된 어제, 나는 남편과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맥주 한잔씩을 했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이 절대 생기면 안되겠지만, 만약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를 앞세우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내 뱃속에서는 꼬로록 소리가 날 것이고, 아무리 참으려 해도 때가 되면 화장실을 가야 할 것 아니야? 난 그게 정말 너무 싫어."


그랬다. 나는 아무리 기막힌 일이 생겨도 이 '몸뚱이'가 존재하는 한, 이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싸는 걸 안할수가 없다는 사실이 몹시 싫었다. 이런 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내 육신이 세상을 저버리기 전에는 해야만 하는 일들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똥오줌은 싸야 하는 인간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 이 몸뚱이를, 삶을 유지하고 지속시킨다는 게 도대체 뭘까 생각하게 된다.


오래 전, 둘째 밍기가 심한 화상으로 수술했을 때의 일이다. 밍기의 수술은 할 때마다 3시간 이상이 걸렸고, 당연히 전신마취를 해야 했기에 금식이 필수였다. 그때 겨우 3살이던 밍기는 자기가 왜 갑자기 물과 밥을 먹으면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목이 마르다고,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밍기를 달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하기 위해 수술이 끝날 때까지 밥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2016년에 있었던 밍기의 네 번째 수술때도 나는 그렇게 밍기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그때는 뭔가 몸에 무리가 되었던지 아니면 마취가 깨고 고통스러워하는 밍기를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던지 내가 쓰러져 버려서 밍기랑 둘이 나란히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이가 물도 밥도 못 먹고 수술을 받는다 해도 그 아이를 낳은 엄마는 정말이지 못나게도 물과 음식이 필요한 것이다. 나 물도 밥도 안 먹어! 라고 해 봤자 망할 몸뚱이는 쓰러지는 상황으로 되갚음을 할 뿐이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그를 알던 사람들의 규칙적이고 평온한 일상에 '장례식장 방문' 이라는 일종의 이벤트가 첨가되고, 그들의 계좌에서 조의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 것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장례식장에서도 고인과 유족들에게 절을 올린 후 다들 틀에 박힌 장례식장 음식을 입에 넣은 후 집에 갈 교통편을 알아보며 귀가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이벤트(?)는 종료되고 일상은 되풀이된다. 밥 먹고 잠 자고 똥오줌을 싸면서.


다음주에 남편이 발령지로 떠나고, 나는 남편이 있는 곳을 언제 가볼지 일정을 살펴보면서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먼 곳으로 혼자 떠나는데 거기에 가보기 위해서는 내 일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참 싫고 서글펐다. 그리고 남편이 거기서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옷은 어떻게 빨아 입는지, 잠자리는 편한지 제대로 알지 못해 걱정하고 궁금해 하면서도 나는 매일 끼니를 챙겨 먹을 것이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다음날 출근때 입을 옷가지를 준비해 놓을 것이며 자기 전에 온수매트를 틀어 침대를 따뜻하게 해 놓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라는 사건은 나의, 우리의 삶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삶의 규칙적인 궤적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변화마저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마는 정도가 정말 그 '부재' 내지는 '소멸'의 가치인 것일까. 그리고 그건 부재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젠가 펼쳐질 나의 장례식장에서도 참석한 누군가는 화장실에 가서 변기의 물을 내리겠지. 그리고 때마침 장례식장 변기가 막혀 물이 넘친다면 그에게는 그 사건이 나의 죽음보다도 더 난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사라짐, 그 무게를 가늠해 보는 것은 공기의 무게를 재는 것처럼 허무한 일이라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문득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기체를 찾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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