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Feb 03. 2024

'처음'을 대하는 자세

일상기록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도 주지만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나처럼 변화를 꺼려하고 정해진 것을 바꾸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죽기 전까지는 그 누구라도 '처음'을 피할 수 없는 법. 심지어 죽음도 그렇다. 누구나 죽음은 처음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처음'에 적응하고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런 내가 가장 많은 '처음'을 경험했던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대학 입학이 확정되고 나와 엄마, 언니는 서울에 올라와서 내가 다닐 학교를 둘러보러 갔는데, 그때 작은 '사고'가 생기고 말았다. 지하철에서였다.


언니와 엄마는 이전에 서울에 와서 지하철을 타봤기 때문에 서울 지하철 시스템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지하철을 타보지 않았던 '촌년'이었다. 요즘은 지하철을 탈 때 대부분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찍고 타지만 그때는 '패스'라는 걸 끊고 다녔는데, 나는 그 패스를 지하철 탈 때 개찰구에 통과시켜서 보관했다가 내릴 역 개찰구에서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걸 전혀 몰랐다. 지하철은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엄마와 언니 모두 그 사실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지하철 처음 타는 거 알면 미리 말해줬을 법도 한데)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서 개찰구에 패스를 통과시키기만 하고 회수하지 않고서 그냥 탔는데, 목적지에 내려서 보니 모두 아까 그 패스를 통과시켜서 나가는 게 아닌가. 나만 패스가 없었다.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엄마가 역무원에게 말해 주었다. 얘가 지하철 처음 타봐서 그렇다고.

놓치지 않을 거예요, 지하철 패스!

그 뒤로 지하철에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나의 '처음'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기숙사 들어가서였다. 입사하는 날 엄마와 함께 와서 짐을 풀어놓고 엄마는 집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대방역에서 엄마를 보내드리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으나 아뿔싸, 도저히 기숙사가 어느 방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지하철역에 출구가 여러 개 있다는 것도 잘 몰랐고, 그래서 그냥 아무 방향으로나 나갔는데 그 방향은 기숙사 쪽이 아니었다. 심한 길치인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서 기숙사를 찾아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헤매고 또 헤매었고, 결국 택시를 타고서야 기숙사에 돌아올 수 있었다.

추억(?)의 대방역. 정말 엄청나게 이 주변에서 헤매었다

기숙사는 아마 9층까지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살아본 건물 중 가장 높은 것이었다. 아니, 나는 사실 서울 올라오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여수에는 그렇게 높은 건물이 별로 없었고, 다른 애들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산다는 걸 이야기로는 들었으나 가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버튼 조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어느 버튼을 누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가서 이 버튼 앞에 섰을 때 나는 생각에 잠겼다. 6층 사는 내가 1층으로 내려가려면 뭘 눌러야 하는가? 나는 고민하다가 '나는 내려가야 하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지금 1층에 있으니 내가 있는 층으로 올라오게 하면 되겠군'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올라감(내 의도대로라면 '엘리베이터야 올라와')'버튼을 눌렀다. 그게 잘못된 조작방식임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에 가서 처음 접한 건 엘리베이터나 지하철같은 '신문물'만은 아니었다. 음식도 처음 먹는 것 투성이였다. 나는 대학에 가서 냉면을 처음 보았다. '냉면'이라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먹어본 적은 없었다. 우리집은 외식을 한 적이 없었고, 어쩌다 가끔 짜장면을 시켜먹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 여수에 '빅웨이'라는 햄버거집이 들어와서 딱 한번 먹으러 간 적이 있었고 그 외에는 집밥 말고 다른 걸 먹어본 적이 없었다.

끊어질 듯 안 끊어지던 냉면

처음 먹어본 냉면은 내게 참 당혹스러운 음식이었다. 도대체 이놈의 면발이 끊어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면발을 자르라고 가위를 같이 주던 시절도 아니어서 냉면은 순전히 먹는 사람의 치아로만 끊어 먹어야 했는데, 나는 아래윗니가 잘 맞물리지 않는 부정교합이었기 때문에 그런 면발을 이로 끊을 수가 없었다. 가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는 면발과 씨름하다가 할 수 없이 면을 뭉텅이로 집어 입안에 욱여 넣으면 면발의 일부는 입 안에, 나머지는 목 안에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 그 불편함과 난감함이란! 나는 그래서 냉면 먹을 때 가위를 같이 주는 요즘의 '배려'가 늘 감사하다.


그런 와중에 처음 먹어보는 피자는 정말 황홀했다. 피자 역시 대학에 가서 처음 접해보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놀라웠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피자 반 판을 해치웠고, 그 기록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물론 지금이야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피자보다 맛있는 음식이 워낙 많아져서 기껏해야 한두 쪽 정도만 먹고 말지만.

피자, 그때 정말 맛있었지

대학 들어가서 처음 접해보는 많은 것들에 신기해하고, 때로는 겁내고 스트레스도 받아 가면서 지내온 지 어느새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도 아직 세상에는 무수한 '처음'이 남아 있다. 그나마 지금은 그동안 쌓아 온 '짬바' 덕분에 처음 접하는 것들도 기존의 경험을 이용하여 그럭저럭 적응해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때가 왔을 때 나는 두려워서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까짓 것'이라고 생각하며 겁없이 덤벼 볼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몸에 살이 붙는만큼 용기에도 살이 찌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마주치게 될, '처음 접하는 죽음' 앞에서도 겁내지 않을 수 있게.

매거진의 이전글 밍기의 첫 파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