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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02. 2024

밍기의 첫 파마

일상기록

중학생이 되고부터 밍기는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다. 수시로 옷과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더니 작년 말부터는 파마를 하겠다고 한다. 여친도 없는 녀석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모 꾸미기에 열심인 모습이 꽤나 웃겼다. 하지만 밍기의 학교는 학생들의 파마를 금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밍기는 한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스타일 변화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는지 드디어 나에게 말했다. 미용실을 예약해 달라고.


사실 나는 아이들의 외모 변화에 관대한 편이다. 나이들면 뭘 해도 스타일이 별로 안 살고, 또 꾸미기가 귀찮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한창 젊고, 어리고, 예쁠 나이 아닌가. 그래서 머리를 갑자기 변발 스타일로 바꾼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큰애 건명이가 초등 저학년때부터 파마며 염색을 하겠다 했을때 다 하게 해주었다.

머리를 파마한 채 뻥튀기로 가짜 이빨을 만든 건명

파마를 해도 좋다고 밍기에게 허락을 해주고 나니 학교에서 걸리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밍기도 그 점을 걱정 안하는 건 아니어서 우리는 앞머리만 자연스럽게 파마를 해보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 후 우리는 남자 앞머리 파마 스타일을 열심히 찾아본 후 마음에 드는 모양을 하나 찾았다.

밍기가 야심차게 고른 머리 스타일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 오후, 우리는 드디어 내 단골 미용실로 향했다. 방학 동안 자르지 않아 제법 길어진 밍기의 머리를 자른 후 파마가 시작되었다.


아, 난 남의 머리 하는 걸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내 머리 할 때에도 다 완성되기까지 꽤나 지루한데 아이의 머리는 끝날 줄을 몰랐고 하품은 점점 자주 나왔으며 어깨와 허리가 결렸다. 하지만 밍기는 난생 처음 파마라는 중차대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인내심 있게 버티었고, 장장 두 시간이 지나서야 모든 과정은 마무리되었다.


머리를 자르고 앞머리와 머리 윗부분만 가볍게 파마한 밍기는 한결 잘생겨 보였다. 생각보다 웨이브가 좀 있어 보여서 학교가서 걸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개학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괜찮겠지 싶기도 했다. 아무튼 밍기는 그렇게 미용실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끝에 '환골탈태' 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애가 훌쩍 큰 게 눈에 보여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아, 이제 이녀석 더이상 애가 아니구나 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에게 와서 수시로 부벼대고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 큰 것도 아닌, 무지개같은 중간지대 어딘가에 있는 녀석.


밍기는 성인이 되면 귀에 피어싱도 하고 머리를 붉은색으로 물들이기도 해보겠다고 한다. 나는 다 해보라고 했다. 밍기 나이 이제 갓 열여섯 살, 그리고 4년이 지나야 스무 살. 꽃처럼 예쁘고 풀잎처럼 싱그러운 나이, 그 길에 무엇이 끼어들어온들 곱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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