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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05. 2024

신규 응원

일상기록

부서에 신규직원이 들어왔다. 오늘 첫 출근으로, 아직 공무원증도 나오지 않은 말 그대로 '완전 새것'인 직원이다. 아직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텐데 업무분장은 되어 있지, 전임자는 인수인계 해준다고 하지, 전화는 오지, 팀장은 제대로 하라고 계속 뭐라고 하지..우리 팀이 아니라서 그 직원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보진 못했지만 보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능히 알 수 있었다.


오후에는 부서 직원 전체가 모여 간단한 회의를 할 일이 있었다. 신규직원도 물론 참석하였다. 다른 직원들이 편히 앉으라 하여도 그 직원은 자리에 앉지 못했고, 회의가 끝나고 나갈 때에도 다른 이들이 나가기를 기다리며 우물쭈물 서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건만 신규직원은 오늘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음이 틀림없는,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하고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내가 공부 대신 '일'이라는 걸 처음 해본 건 짧게 다닌 대학원에서였다. 학비를 보충하기 위해 학과 사무실 조교를 했는데, 1학기에는 신입생도 들어오고 새로 시작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일거리가 엄청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사람들은 몰려들었으며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교수들은 전화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난데~" 라고 말을 시작하였다. (도대체 '나'가 누구인데요ㅠㅠㅠ) 수업에 쓸 자료는 본인이 직접 준비해야 하건만 복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학과 사무실 복사기를 이용하여 과 조교가 자료를 준비하도록 시키는 교수도 많았다. 2천장이 넘는 자료를 복사하느라 복사기에도 불이 나고 내 손에도 불이 났다. 게다가 당시 학과장이던 교수님은 얼마나 성격이 급하고 무섭던지! 안그래도 큰 눈을 부릅뜨고 이 일을 왜 그렇게 처리했냐고 질책할 때는 무서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시달리는 나를 보며 신임 교수님은 처음에는 내가 대학원생인줄도 몰랐다고 했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일찍부터 일을 하네'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내가 학생인 걸 알고 놀랐다고 했다. 학생에게 저렇게 일을 시키다니! 하고.


그러다가 도저히 더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대학원을 그만두고 취업을 했는데, 업무분야는 전혀 달랐지만 대학원에서 한 학기동안 혹독하게 일을 했던 경험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데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그건 뒤늦게 공무원이 된 후에도 그랬다. 시에 와서 처음 근무한 부서는 상당히 일이 많은 곳이었고 팀장은 깐깐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무척 힘들고 피곤했지만 그때 배웠던 것들이 내가 시에서 일을 하며 버틸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오늘 하루를 아무 정신없이 보내었을 신규직원을 보며 나는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직장에서는, 화장실에서도 울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버텼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전화가 울리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어 응답해야 했을 신규직원의 걱정과 긴장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의 떨림과 진동이 가능한 한 빨리, 힘들지 않게 차분히 가라앉고 공무원으로서 무사히 자리잡기를 옆 팀 아줌마 직원이 조용히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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