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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19. 2024

물고기 잔혹사

일상기록

남편이 원격지로 발령이 난 후 내가 집에서 해야 할 일이 한가지 더 늘었다. 그건 남편이 키우는 물고기(구피)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다. 구피 어항은 두 개인데 하나는 성체가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번식력이 왕성한 구피들이 까놓은 새끼를 분리해서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피 녀석들이 지들 새끼를 먹이인 줄 알고 먹어버리기 때문에.


구피들이 우리집에 온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나는 그녀석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다. 나는 하루종일 직장에서 실수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온 정성을 쏟고 있었고, 퇴근 후에는 그 정성을 오롯이 아이들에게 쏟았다. 원래 개를 무척 좋아해서 '인기 실내견'이라는 책까지 사서 볼 정도였으나 (개를 키우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이 태어난 후 동물에 대한 내 관심과 애정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아무래도 나는 한 번에 둘을 사랑하지는 못하는 성격인지.


그래서 남편이 구피에게 먹이를 어떻게 주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평일에 남편이 집에 없게 되면서 구피를 내게 부탁하고 갔기 때문에 모른체 할수가 없었다. 남편은 2~3일에 한번씩 먹이를 주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철저히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사람답게 요일을 따져가며 먹이를 준다. 월수금일 아니면 화목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척 찜찜하다.


오늘 밤 아이들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다가 물고기 밥을 주어야겠다고 하니 큰애가 예전에 내가 겪었던 '물고기 잔혹사'를 소환한다. 그 이야기를 기억해보며 우리는 깔깔 웃어댔다.


1. 아이들을 각 방에 재우고 나는 거실에서 자던 때였다. 거실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물고기가 펄떡거리는 소리가 그날따라 무척 가깝게 들렸다. 날이 밝고 남편 출근 후 거울을 본 나는 아연실색했다. 내 긴 머리 끝에 물고기 한 마리가 죽어서 말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간밤에 들은 펄떡거리는 소리는 거실에 둔 어항에서 물고기가 튀어나와서 낸 거였다.

나는 징그러워서 도저히 내 머리에 붙은 물고기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낼수도 없어 반쯤 울면서 물고기를 제거한 후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이 사고를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남편님의 반응.

"저런..물고기 안 죽었어?"


2. 건명이가 4~5살때 정도의 일이다. 건명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서 등원시킨 후 집에 돌아와서 식탁 쪽을 보니 의자 위에 웬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당시 건명이는 물고기 그림을 곧잘 그리며 놀았기 때문에 나는 녀석이 물고기를 그려서 그걸 식탁 의자에 놓고 간줄 알았다. '이건 꼭 진짜같네' 라고 생각하며 물고기를 만진 순간..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인 줄 알았던 물고기는 차고 축축했다. 그제서야 건명이가 등원 전 물고기 어항 앞에서 꽤 오래 서성거렸던 게 기억났다. 녀석이 유치원 가기 전 물고기를 가지고 놀다가 버스탈 시간이 되자 대충 식탁 의자 위에 던져놓고 가버린 것이었다.

딱 요맘때..장난꾸러기 사고뭉치 강건명 군

3. 가족들과 강화도 여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나는 좀 지쳐서 안방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팔딱 팔딱 소리가 났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가까워졌으며 나는 몸을 일으켜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원인을 발견한 나는 또다시 으악!!! 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도 갯벌에서 잡아와 어항에 넣은 짱뚱어가 무려 세 마리나 탈출하여 안방으로 팔딱팔딱 뛰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 작은 녀석들이 어떻게 어항 밖으로 나왔으며, 왜 하필이면 안방으로 줄줄이 뛰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경악스러운 상황임이 분명했고 나의 비명을 들은 삼부자는 매우 재밌다는 듯 낄낄대며 짱뚱어를 체포해서 다시 어항에 넣었다.

탈출을 하다니..요망한 놈들

희한하게도 식구들 중 나에게만 그런 황당한 일이 생기곤 해서 가족들은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한다. 물고기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날 때까지 구피에게 밥을 주는 일은 내 차지다. 이쯤되면 나와 물고기 사이에는 뭔가 신묘한 인연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아! 그러고보니 내 별자리가 물고기자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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