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Feb 17. 2024

화성인 아들, 금성인 엄마

일상기록

지난 겨울, 추운 날이 은근 많아서 일년 내내 잘 해오던 트래킹을 못하고 집콕한지 몇 달 되었다. 원래 없던 근육도 소실될 지경에 나날이 체력까지 저질이 되어가는 게 느껴져서 운동을 뭐라도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만 한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어제는 큰애 건명이와 무슨 운동을 할 건지 같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건명이가 나더러 팔에 힘을 줘보라고 한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랬더니 건명이는 주먹을 꼭 쥔다고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소 머쓱해진 나는 최선을 다해 팔에 힘을 넣어 보았다. 그러나 내 팔을 만져보는 건명이의 표정은 알쏭달쏭했다. 이윽고 녀석이 물었다.

"엄마, 힘 준 것 맞아?"

"야, 나 지금 최대로 힘 주고 있어"

그러자 녀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말한다. 팔에 힘을 주면 근육이 커져야 하는데 팔뚝 크기가 그대로라고. 그러니까 나는 힘을 불어넣을 만한 근육조차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도 예전엔 조그맣지만 '알통'이 있었던 것 같은데..어쩐지 문이 좀 무겁다 싶으면 여닫기가 힘들더라니.


그리고 오늘 밤에는 불금 저녁답게 치킨을 뜯으며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건명이는 운동을 고루고루 잘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달리기, 멀리뛰기 같은 육상 종목에 특기가 있다. 그래서 건명이는 초등 3학년때부터 학교 체육대회에서 계주 주자로 뛰곤 했다. 운동과는 거리가 우주만큼 멀었던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들이 매번 계주 주자로 나서서 체육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듯 자랑스러웠다.

건명이가 체육대회에서 달리고 있는 모습

건명이에게 100m 기록을 물어보니 11초대라고 했다. 놀라운 기록이라고 칭찬해 주고 있는데 녀석이 내 기록을 물어본다. 나는 고등학교 때 육상부였던 친구를 따라 달리느라 최선을 다해 뛰었던 때의 기록이 18초라고 했다. 그러지 않았을 때는 20초 정도. 그랬더니 녀석이 묻는다.

"달리기 기록이라고요? 걸은 거 아니예요?"

"야, 달렸다니까? 최선을 다해서 뛴 거야"

"100m 뛰는데 20초나 걸린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슬로우모션으로 돌리는 거 아니면"


그랬다. 타고나기를 '운동권'으로 태어난 녀석, 못하는 운동이 없는 녀석은 지독한 몸치인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건 오래 전부터 그랬다. 몇 년 전 수영을 배울 때  석 달이 지나도록 자유형을 익히지 못해 허덕거리다가 수영을 잘하는 건명이에게 요령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냥 물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돌리면 돼!"


녀석이 운동에 말 그대로 '꽝'인 엄마를 이해 못하듯이, 나 역시 공부에 고전하는 녀석을 온전히 이해 못하고 있다. 왜 저렇게 공부를 힘들어할까. 그냥 앉아서 하면 되는데.. 수업시간에 잘 듣고 집에 와서 문제집 풀고 틀린 거 익히고 외울 거 외우고..그럼 되던데? 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드는 것이다. 건명이도 아마 팔뚝에 근육이라고는 없으며 고등학교 때 멀리뛰기 착지를 하다가 혼자 자빠져서 기절하고(나의 고등학교 시절 흑역사 중 하나다) 100m를 뛰는 데 20초씩 걸리는 엄마가 외계인 같으리라.


그렇게 건명이와 나는 공부와 운동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서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다. 이정도면 한명은 화성인, 다른 한명은 금성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래도 화성인과 금성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엄마와 아들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만나 서로를 무한정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 비록 공부와 운동은 서로에게 결코 정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일지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영원한 안식을 축하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