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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Nov 04. 2020

[책소개]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담담하게 위로하기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오래 전부터 장기하와 얼굴들의 팬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을 좋아했고, 그들의 공연을 좋아해서 혼자서도 공연을 종종 보러갔었다.

해체 이후 다시 완전체 공연을 볼 수 없다보니, 가끔 페스티벌에서의 신나는 공연이 생각나서 그립기도 하다.

그렇게 음악이나 매체를 통해 소식을 자주 접하지 못하던 와중에, 최근 장기하의 산문집이 나온 것을 보고 바로 구매해서 읽어보았다.













멋있게 포장하지도 않았고, 꾸밈 없이 솔직하고 간결한 말투로 쓰여진 글이 좋았다.

서울대 출신에 <싸구려 커피>라는 유니크한 곡으로 이름을 알린 장기하라고 하면 왠지 남들과는 다른 일상과 삶을 걸어왔을 것 같지만, 이 책에 나타난 장기하의 스토리는 평범함 그 자체이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는 그를 꾸미는 화려한 문장은 없지만, 그가 굉장히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는 별 거 아닌 고통을 겪어온 사람이기에, 그가 만든 노래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일상의 미묘하고 소소한 부분들을 캐치해내서 표현해내는 능력과, 그의 단단함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온스테이지 >> 장기하와 얼굴들 - 별일 없이 산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cKxh8CPNY







<기억에 남는 문장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오늘 하루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바로 그 때문에 누렸던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내가 하루종일 막막함에 시달렸고 그래서 방금 밤 산책을 하며 쓸쓸함을 느끼긴 했지만 어쨌던 오늘도 마음대로 사는 데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물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그 밖의 무엇에 대해서든 욕심을 하나하나 줄여나가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생명에 대한 욕심마저 딱 버리고 죽으면 정말로 멋진 삶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집착을 버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실 무언가를 많이 좋아할 수 았다는 건 아무튼 행복한 일 아닌가.
그런 내가 또 하루를 살았다.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꽤나 괜찮은 날이었다.
새삼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힘에 이어서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어쩌면 십 년 후의 어느날 무심코 <Abbey Road>를 듣다가 오늘을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낀 적도 많다. 하지만 어쨌든 내 인생은 대체로 순탄하게 흘러온 것이다.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도 많고, 부당한 폭력을 당해 얻게 된 상처를 평생 짊어져야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 고통이 어떤 것인지, 별거 아닌 고통만을 느끼며 살아온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런 내가 만든 노래가 과연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책 소개>

재기발랄한 가사와 개성 있는 음악으로 사랑받아온 뮤지션 장기하의 첫 산문집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대중음악가로서 느끼는 일상다반사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솔직, 담백, 유쾌하게 담았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때론 웃기고, 때론 담담하고, 때론 마음 깊이 공감할 만한 장기하다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즐겁고 상쾌하다. 작은 사물도, 사소한 사건도, 지나치기 쉬운 일상도, 그의 글 속에서 특별하고 감각적인 경험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다.


장기하의 산문은 예의 그 강렬하고도 문학적인 노래가사들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아 한달음에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의 노래들이 소탈하고도 단단한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은근히 신경쓰이는 일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사건들, 사물들을 포착해 자신만의 유쾌한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는 장기하식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즐겁고 포근한 마음이 된다. 뮤지션이 아닌, 작가 장기하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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