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은 생각보다 사소하다.
기획자로 일하는 것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 극명하게 공존하는 것 같다. 기획서를 쓰고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진행하는 동안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이슈들은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할 만큼의 슬픔을 주기도 한다.
나는 무슨 기쁨으로 이 일을 10년 넘게 해 오고 있는 것일까? 요즘은 ‘아, 누워있고 싶어!’ 와 같이 본능적인 내 감정을 벗어나 내 일의 보람과 기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
일의 기쁨은 생각보다 사소하다.
내가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엔돌핀이 돌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지표가 좋았을 때? 월급을 받았을 때? 여러가지를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기쁨을 느낀 순간은 생각보다 사소했다.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옆팀 동료분이 주니어였던 나에게 한 말을 나는 지금까지도 그 장면 그대로 기억한다.
저는 OO님이 오랫동안 이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기획자로써의 삶이 괴롭다고 느끼는 순간이 들면, 이 말을 떠올린다. 당사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이 일을 해야한다는 그 짧은 말이 지금까지도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를 함께 해내고, 이슈를 함께 헤쳐나간 동료들과의 애정, 힘든 순간에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든든함. 그것이 기획자가 느끼는 일의 기쁨의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다시금 깨닫는다.
연차가 높아지고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기대가 커져갈 수록 이런 기쁨들은 줄어든다. 일을 빠르게 잘 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이상의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무게도 따른다. 갈수록 왠지 모르게 외로워진다는 누군가의 말도 조금씩 공감이 되는 날들이다. 그래서 이런 사소한 기쁨을 느꼈던 순간이 많이 그립기도 하다.
그럴 수록 스스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일이 중요하다. BTS의 석진이 인터뷰에서 한해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한 유명한 말이 있다.
“너의 수고는 내 자신만 알면 돼“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나의 수고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격려의 말,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결코 나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은 요즘 더욱이 마음의 무게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이제는 스스로 나의 수고를 알아주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기쁨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중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은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전해줄 수 있기를. 이것이 내 새로운 일의 기쁨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