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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딤 Jun 09. 2024

팀장님, 제가 그렇게 비정상 같아 보이시나요



혹시 우울증 있어요?     


첫 회사 팀장님은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게 물었다. 난 정말 태어나서 이런 질문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어버버 하며 답했다.


자.. 잘 모르겠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은 대답이다. 네, 혹시 제가 지금 보이시나요?라고 대답했어야 했다. 그렇게 대놓고 정신병 있냐고 물어보는 건 너무 모욕 아닌가. 팀장은 그 후로도 내게 한 번 더 물어봤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문제가 있냐고. 팀장님은 눈대중으로 내게 공황장애까지 진단해 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니라는 뉘앙스로 대답하기를 꺼려하니, 팀장은 아, 내 추측이 맞는데.. 하는 표정으로 아쉬워했다. 맞다고 하면 자르려고 하나? 병원비를 내줄 것도 아니면서. 우울증이 있어서 일을 소홀히 했던 건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다. 업무적으로 배려해 주거나, 경험을 공유해주려 한다거나 그런 의도도 없어 보였고, 정말 본인이 궁금해서 물어본 표정이었다.


이 일화 외에도 나는 가끔 사람들이 내 앞에서 우울증 얘기를 하면서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도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팀 회식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바다 앞에 살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보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팀원이 그런 말을 했다.


바다 근처에 살면 우울증 걸린다던데..      


테이블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대답했다. 바다 때문에 우울증 걸릴 거면 산에서도 우울증 걸리지 않을까요? 하하하. 이상하게 웃는 나를 보며 주변이 왠지 조용해졌다. 아니, 왜 자꾸 이래. 왜 이런 얘기 나올 때마다 이렇게 숙연해지는 느낌이지? 내 연말정산 의료 기록 자료 다들 공유했냐고.


혹시 나 정신질환 있어 보이는 걸까?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도 피해의식을 느꼈다. 관련 언급을 전혀 한 적이 없는데, 왜 자꾸 내 앞에서 우연찮게 멘이슈 얘기가 나오는 걸까. 내가 혹시 피해를 주고 있었나?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씻으려 해도 씻겨지지 않는 흔적 같은 게 있기도 하는 건가. 우울이나 불안이 내 몸에, 내 정신에 뼛속깊이 체화되어서 떨어뜨리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건가. 난 그렇게 침울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모두가 날 그렇게 우울증 환자로 지레짐작해 버리고 나는 그럼 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사회생활하는 당당한 사회부적응 정신병자가 되면 되지.

대놓고 선전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자꾸 귀찮게 물어보면 심도 있는 대화신청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내 정신병 감당 가능하면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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