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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35.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by 늘보

한마디 : 낯선 감정을 마주하며 글에 빠지고 싶다.

#아름다움이나를멸시한다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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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명확한 답이 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과연 같은 세상일까. 주위가 낯설어지는 듯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날카롭게 파고 드는 작가의 시선 때문에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며 고민을 한다. 나였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난 날의 어떤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한 일이 있었던가.


여섯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가끔 섬뜩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그를 한번 노려본 뒤 그대로 뚜벅뚜벅 영정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이태리 식당에서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세계를 보았듯이 아버지 역시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아들을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뚱뚱한 아이의 기억을 갖고 떠나버렸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B는 여전히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렇다고 해서 상상까지 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체념한 듯 조용히 헤엄치던 수족관의 물고기에게도 아주 가끔 온몸을 비틀어 파닥거리며 위로 뛰어오르는 짧은 순간이 있다.


다음 순간 P선배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내 등 너머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노란 민들레 앞에 멈춰선 곰은 냄새라도 맡듯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꺾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자연 상태로의 존재, 그 아름다움과 천연함, 그리고 위엄에 압도되었다.


프릴이 달린 폭넓은 스커트 아래 가지런히 모은 그녀의 짧은 두 발이 허공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나로부터 나누어진 내 몸의 일부가 가볍게 허공을 날아올라 악기 연주자에게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각 각의 소설마다 잠깐 잊고 있던 내면을 들여다 본다.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다. 낯선 감정을 마주할 때면 잠시 그 페이지에 머물며 생각을 한다.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끌어올리게 만드는 소설이 은희경 작가가 아닐까. 자꾸만 읽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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