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과 나 그리고 엘리자베스

by 이정화

특별한 일이 일이 없는데도

나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가 있다.

생각은 멋대로 흘러가 버리는데 대부분 과거로 향한다.


그렇게 시작된 감정이 지나칠 때는 잔잔하게 나를 멍친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멍치다 라는 표현은 어릴 적 엄마에게서 자주 듣던 전라도 방언이다.

나는 멍치다 라는 표현을 굳이 쓰고 싶다.

물가에서 장난이 심해 옷이 젖으면 엄마가 언성을 높여

옷 다 멍쳤네 !

했었다.

잘못하여 멀쩡한 무엇이 젖어 당장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다 멍쳐버렸네.

했다.

멍치다 라는 말을 쓸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비난이 들어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 버리는 나의 감정에 비난을 담고 싶다.


원하지 않는 감정에 너무 오래 담가져 있지 않기 위하여 소설을 읽을 때가 있다.

그렇게 손에 올리브키터리지를 들었다.


[밀물]은 소설집의 두 번째로 나오는 단편이다.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에서 읽어 내려가는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정돈이 되지 않는다.

케빈이라는 남자가 있다.

바닷가에 차를 몰고 와 차 안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그의 엄마가 어렸을 적에 자살을 했고 그 기억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그는 엄마와 같은 길을 가기 위해 옛 집을 다시 찾는다.

옛 집은 숲의 입구에 있다.

그런데 케빈이 다시 바닷가에 있다.

무슨 말이야? 다시 읽는다.

케빈이 옛집으로 간 것은 바닷가로 오기 전이다.

케빈은 계속 바닷가에 차를 대놓고 있다.

그러니까 공간의 이동은 케빈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케빈은 의대를 졸업했다.

케빈을 맡고 있는 교수인 골드스타인 박사가 있고 정신병환자인 클라라가 나온다.

클라라와 연애를 했다는 말인가?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고 일어나는 일들이 복잡하지도 않은데 나는 자꾸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나는 소설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다시,

케빈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있다. 소설의 작가이다.

내가 있다. 독자이다.

세 사람이 답답한 심정으로 서로를 본다.

케빈은 여전히 차 안에 앉아 바닷가를 응시하고 있으며

작가의 입이 벙긋거리는데 들리지 않는다.

그들을 끌고 나아가 끝을 봐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이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집중하려 노력하며 천천히 천천히 읽어 나간다.

서너 번 이상, 책장을 되넘겼다. 제대로 이해하고 말리라.

케빈은 죽기 위해 바닷가에 온 것이다.

작가가 케빈의 의식을 나열한 것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케빈의 선택에 명분을 주는 것이었다.


케빈은 삶에 대한 의지가 박약한 남자이다.

그건 너무나 큰 죽음의 의지를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읽기 어려웠던 것은 그의 의식이 촘촘해서 였다.

또한 나의 의식이 여기저기에 얽혀 있어서 그의 의식을 좇지 못했다.

아주 사소한 일들로 빽빽한 나의 일상.

빽빽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다.

촘촘한 것은 그런 일에 갖는 개인적인 견해, 은밀한 기억이다.

눈빛, 말의 내용보다는 뉘앙스를 품은 말투, 분위기 같은 것,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같은 것.

그리고 그것들에서 파생되는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케빈은 세심한 사람이고 그런 일을 극복할 만큼 강인하지 못했다.

소설은 케빈이 하고 싶었던 단 한 마디를 결국 뱉어낸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케빈은 어머니가 늘 그리웠다.

그리움이 너무나 지독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말고는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움이 자꾸 그의 마음을 미끄러지게 했다


사건은 과거로 가는 길을 불공평하게 만들고

어떤 길은 심하게 기울어져 있어서 발을 딛기만 하면 미끄러진다.


케빈에게 필요했던 것은

미끄러져서 도달한 거기에서 다시 한번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는 그 길을 만들었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패티가 실수로 물에 빠지자 케빈이 달려 나간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케빈을 움켜쥔 패티의 그 강렬한 힘.

삶에 대한 의지를 가득 담은 그 힘을 케빈에게 선사하기 위하여

그 마지막 장면을 위하여

작가는 촘촘한 그의 의식을 뚫고 지나왔다.


나는 몇 번이고 마지막 문단을 다시 읽었다.

이제 막 무대의 막이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작가를 따라 케빈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고

뚫고 지나와 케빈의 달라진 얼굴을 보았다.


케빈은 이제 다시 한번 미끄러질 수 있다.

죽음을 향한 힘만이 강한줄 알았었다면

이제 패티로 인하여

삶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포기할 수 없는 강력한 의지를 피부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죽음밖에는 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미끄러질 때

거기에서 다시 패티가 그에게 준 삶에 대한 강렬함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볼수 없었지만 나는 케빈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때에 나의 의식은 흘러 흘러 어느 곳에 정차 한다.

그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왜 계속 가고 또 머무르는 것일까.

나에게 필요한것은 거기에서 다시 한 번 미끄러지는 것이다.

케빈 같은 일은 나에게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책을 읽음으로 계속 미끄러질 길을 닦고 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책들처럼,

케빈의 이야기도 어느 때에 나로 미끄러지게 할 것이다.

촘촘한 나의 의식을 뚫고 말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