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노래를 듣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오 난 겨울밤도
그리움에 모두 덮혀질까 두려워요.
사랑은 언제나 냉정했고
영원은 그렇듯 거짓이겠죠.
목이 메어 와도 삼켜 버려요.
오 난 여름밤을
눈물로만 가득 채웠어요.
열일곱 살 때 삼촌이 용돈으로 쓰라며 오만 원을 주고 가셨다.
매우 오랜만의 단비 같은 용돈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그 떠오른 많은 생각 중에서 나를 어쩔 수 없게 만든 것이 엄마의 화장대였다.
엄마의 화장대에는 화장품이 별로 없었고 화장대 앞에서 엄마는 ‘아이고, 화장품 사야 하는데..‘를 자주 중얼거렸다.
‘화장품 사야 하는데…’라는 말이 내 마음에서 가장 크게 울린 걸 보면 열일곱의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4월의 어느 토요일, 벚꽃이 저물어 가고 있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두려움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마음을.
그 사람이 선물을 받아 들고 좋아해 줄까,
이 선물을 받고 나를 더 사랑해 줄까? 하고 두근두근해하는 마음을 말이다.
시내의 어느 화장품 가게에서 스킨과 로션 한 세트를 골랐다. 가격은 4만 7천 원이었고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3천 원이 남았다.
나는 수줍게 떨면서 마치 고백을 하는 소녀처럼 엄마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게 뭐야?”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포장지를 풀어헤쳤다.
“아이고, 우리 딸이 화장품을 사 왔구나.”
메마른 음성으로 말하며 엄마는 화장품을 화장대에 나란히 두었다.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났니?”
엄마는 무심하게 물었고, 나의 대답을 건성으로 들었으며 한숨소리와 함께
“으응, 그랬구나. “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내 방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주었던 것은 4만 7천 원짜리 화장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때 내가 줄 수 있는 내 마음의 전부였다.
삶에 지쳐 생기가 없는 그 여자에게 나는 내 전부를 주고 싶었다.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 크기만큼 서운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오빠가 엄마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이 엄마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는지 엄마는 내내 그것에 대해서만 말했다.
친척들에게, 친구랑 통화할 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엄마는 그 일에 대해 자꾸 말했다.
그때마다 서운했는데 그건 그동안 내 마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그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말했다.
“근데 엄마, 나도 내 용돈 아껴서 엄마한테 이것저것 사줬어도 엄마 이렇게 까지 좋아하지 않았었잖아. 그 당시에 5만 원이면 나한테는 적은 돈 아니야. 나도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였는데 그중에서 엄마한테 쓴 거면 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야. “
문제는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참았는지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데 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다퉜다.
나는 엄마의 없는 기억을 불러들이기 위해 애썼고
나중에는 엄마도 기억을 해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그게 뭐 별거라고, 하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이야기 하기를 포기했다.
어디에 계신가요
보고 싶어요
.
.
당신은 다 모르겠지만
내겐 내겐 전부였어요.
아무도 모르게
노래하다 잠들 때
어디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고 있을 때
많이 그리웠어.
.
.
어째서 사랑은 이렇게 그립고 애달프고 서운할까.
왜 옆에 있으면서 부재하고
흐르는 눈물을 알아주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다 마침내 매몰찬 마음을 갖게 할까.
이제 더 이상 아파도 아무렇지 않도록 마음을 얼음장처럼 굳혀버리게 하는 걸까.
사랑노래를 부르며 엄마를 생각한다.
이제는 다 늙어버린 여자.
그러나 나는 그녀의 밝고 부드러운 피부를 만지며 안정감을 누렸으며
부드러운 음성에 위로받았으며
꽃잎 같은 치마 뒤에서 세상을 구경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음성에 마음이 찢어졌고
무뎌진 가슴 때문에 혼자 울었어야 했지만
그녀는 내가 아무런 힘이 없을 때 나의 전부가 되어주던 젊은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로 인해 나의 어떤 마음이 영원히 상실되었다 할지라도 지금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어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