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다. 아니 잘 못 잔 것 같다. 10시간을 내리 누워 있는 동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눈을 감으면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가고 있는 꿈을 꾸었다.
기상의 마지노선을 알리는 알람소리를 들으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개!”
내가 나에게 짧게 명령했다. 이 방법은 제법 효과가 있다.
명령과 함께 몸이 느리게라도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루는 그런대로 굴러가게 된다.
씻고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토요일에 나는 직장의 F와 M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M은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희망퇴직자였다.
오너가 우리 중에서 희망퇴직자를 구했었다는 소식을 M의 퇴직 소식보다 나중에 듣게 되었다.
제일 먼저 오너의 의중을 눈치챈 M이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희망퇴직자로 신청을 한 것이었다.
우리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M은 우리의 개인적인 고민 상담 같은 것을 잘 들어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고민은 얘기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고 이쪽과 저 쪽의 일을 도맡아 중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동료들은 조금씩 M에게 의지하며 일하고 있었다.
오너는 M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았는데 그것에 대해 M은 서운해 하기는 했어도 “그냥 내 팔자로 생각할래.” 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어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었다.
그것이 나는 내내 불만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어쩐다고, M의 도움으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그가 얄미웠었다.
사실 M은 늦은 나이에 입사를 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경단녀로 살다가 둘째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다시 일을 시작했었다.
당시에는 나도 아직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M의 어려움, 자신의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에서 무엇인가를 느낄 M의 심정 같은 것은 알턱이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경력자로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낳고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하게 되면서부터 M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먼저 M에게 다가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점점 친해졌고 M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우리는 동고동락하며 15년을 함께 일했다.
오너는 회사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그럼에도 회사가 굴러간다. 중간 관리자들 덕분으로. )
한자리 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려 다니느라 바빴으면서
어려움이 닥치자 그 긴 세월 동안 회사를 위해 애쓴 직원 하나 자르는 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네 탓인 오너 밑에서 고생한 M을 보낼 생각을 하니 함께 점심을 먹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별일 없는 주말을 보냈는데, 출근을 하려고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니 어떤 울음이 쏟아졌다.
마음이 구슬펐다.
사실 작년에도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떠났었다.
오너는 그녀에게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몰랐었어?”라는 막말을 던졌었다.
자기가 눈치 주면 알아서 나가줘야 하나…. 이런 나쁜 상황에 대비해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이 무식한 오너는 위로금을 주고 싶지 않아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법은 보통 3개월치 급여를 위로금으로 정하는데 그는 그녀에게 100만 원으로 생색을 냈다.
그런데도 왜 신고를 안 하냐고?
떠나는 그들은 한결 같이 ‘더러워서 ‘라고 한다.
그리고 오너가 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경우라면 지방의 좁은 업계 환경상 노동자들은 신고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그들은 법을 어기면서도 이를 당연히 본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2주 후면 M 없이 일해야 한다.
M의 자리를 메울 J는 신나 보인다.
다음은 네가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는데 넌 신이 나냐?
나는 속으로 말한다.
이혼하면서 양육권을 가져오기 위해 나는 이 직장을 놓을 수 없었었다.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때 오너가 나를 똥취급을 할 때는
“두고 봐라, 내가 너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네가 나를 잡게 하겠다 “라는 오기로 끝까지 버텨냈고
마침내 그날이 와서 5년 전 나는 이직 준비를 마치고 그에게 통보를 했는데 그와 M이 나를 같이 잡아 월급을 꽤 올리고 이직을 포기했었다.
그때 그냥 갔었어야 했을까.
15년 동안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에게는 늘 생존이 중요한 문제였었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자니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하고 내내 눈물이 흘렀다.
왜 너는 그런 회사 발로 차고 나올 수 없니
그렇게 좋은 사람들 다 떠나보내는 회사,
사람의 진가도 알아주지 않는 회사,
왜 네가 먼저 떠나지 못하니.
하고 되물으며 내내 울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의 철학을 만드는 이유.
그건, 던져지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하기 위해.
어쩌면 조만간 나는 퇴사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