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이를 길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이는 과학수업에서 실험용으로 썼던 3D 안경을 쓰고 동네를 활보하고 있었다.
왼쪽은 빨간색 렌즈, 오른쪽은 파란색 렌즈인 그 안경을 집에서도 곧잘 쓰고 있었는데 밖에서도 쓰고 다니는 줄은 몰랐다.
살짝 창피함을 느낄 때 아이가 안경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자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늘을 봤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다가 했다.
집중하는 표정은 일그러지다가 웃는 듯한 인상으로 바뀌곤 했다.
내가 마주 오는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도 아이는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다.
내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에도 여전히 안경에 집중했기 때문에 처음에 나는 아이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줄 알았다.
“엄마, 엄마도 이거 한 번 써 봐.”
아이는 내게 안경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마지못해 안경을 받아 들고 써보았다.
별 다를 건 없었다. 초코맛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딸기맛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예상 가능한 빨간색과 파란색의 혼합이었다.
내가 재빨리 안경을 벗자 아이는
“재밌지? 세상이 신기하게 보이지?”했다.
아들은 가끔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고, 혹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그런 질문에 재빠르게 대답하지 못할까? (가장 좋아하는)이라는 것은 내게 너무 과분한 취향이다.
(가장 좋아하는)이라는 것은 또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내게는 이제 (가장 좋아하는) 그 무엇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에게는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득 끌어안고 사는 아들의 눈에 있는 빛이 내게는 상실된 그 무엇인 것 같다.
「자, 보세요. 이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초록색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바다에 한 덩어리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지요.
커다란 물고기 떼가 바다 밑바닥에서 솟아올라 파도 사이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답니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풍어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이 근방 어부 나부랭이들의 흐리멍덩한 눈에 한순간 꿈을 꾸게 하는 불온한 잔물결이라고, 아버님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에게는 좀 다른 의미가 있는 듯했습니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것일 뿐 그게 대체 어떤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환상의 빛 중에서-
여자가 보는 빛나는 잔물결이 있다.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아름다운 것이다.
여자는 그 빛나는 잔물결을 보면서 새로 결혼한 시집의 시아버지가 해 주신 말을 떠올린다.
그 잔물결은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것이라고.
그 멀리 있는 사람이 어부 나부랭이들이라고 유미코는 말하지만
유미코야말로 근방의 어부 나부랭이들처럼 반짝이는 것들에 무엇이,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아버지는 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불온할지라도 유미코는 기꺼이 속아 넘어가면서 저기에는 분명히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나는 무엇보다 그런 말들을 죽은 남편에게 하고 있는 유미코를 본다.
여자는 상실한 것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실했지만 상실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있다고.
저 빛나는 잔물결을 볼 때마다 삶에 무엇인가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보고 싶은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다고.
그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마음일지라도 말이다.
잠이 들기 전 아들은 내게 묻는다. “엄마, 내일 아침밥은 뭐야?”
아침을 먹은 후에 또 내게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특별할 것 없는 내 요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들은 세상에 대해서도 끝없이 기대한다.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며 풍어를 기대하는 어부나부랭이처럼 눈이 먼다.
(가장 좋아하는)이 사라져 버린 나에게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잔뜩 부푼 아들은 삶에서 보고 싶었던 그 무엇을 보게 해주는 매개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