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낸 아이를 안락한 시트에 앉혀 돌아오는 길엔 몽글거리는 마음이 언제나 가득했다.
키만 컸지 나에겐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너를 여전히 안아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너를 데리러 가는 일은 너를 위한 일이지만 그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알람에 맞춰 너를 데리러 가는 그 짧은 드라이브가 행복했다. 유치원 앞에서 너를 기다리던 그 마음은 고등학교 앞에서도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설렌다. 비록 집에 돌아와 뒤집어 벗은 양말에 버럭 소리를 지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다.
어제도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하늘이 너무 완벽하게 아름다웠다는 것
가을 공기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 창문을 열었던 것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던 것
학교 앞 골목에 진입하니 교복 입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옷을 입고 마스크까진 낀 아이들은 모두가 내 아이 같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이가 입학할 당시에 있었던 한 사고였다. 통학길에 일어난 사고로 한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 별이 되었다. 그리고 한 아이는 더 이상 아이들과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의 충격은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 일은 글로도, 입으로도 언급하는 것조차 가슴 아픈 일이 되었지만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아이가 살다 간 것을 엄마만이 기억해 준다면 정말 너무 슬픈 일이 될 것 같다. 누군가는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아이가 살다 간 그 짧고 빛났던 날들을 추억해 주어야 한다.
올봄, 다른 한 아이의 소식은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아픔을 딛고 명문대에 입학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얼마나 의연하게 고3을 보냈는지… 그것은 결코 어른도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의연한 문장에 숨어있는 아픔은 누구든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이 행복한 길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의 길이 되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던 내 마음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가끔 생각이라는 것은 뜬금없이 나를 다른 공간에 데리고 가곤 하는데 완벽한 가을은 갑자기 칼바람이 불던 2월이 되어 있었다.
차에 탄 아이가 “엄마 왜 그래?”라고 말했을 때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타인의 슬픔에도 가슴이 쉽게 무너져 내리는 일이다.
불행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단지 나를 피해 간 불운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고난들이 남일 같지 않아 진 것은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일들이 걱정과 염려가 된 것은 부모가 되고부터였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잠 못 드는 밤을 갖는 것이다. 내 삶에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더 쉽게 잠이 들고 더 오래 단꿈을 꾸었겠지
더 적은 걱정거리와 더 적은 후회를 가지고 가볍게 살다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있어서 나는 타인의 슬픔에도 가슴이 아린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나밖에 모르던 나는 수레를 끄는 노인에게서도 고된 하루를 읽어내게 되었다.
다음 세상의 물과 공기를 걱정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동그랗게 움츠린 아이를 안을 때부터 조금씩 동그래 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밤 내 뾰족함을 갈아내고 엄마가 되어간다.
가끔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에서 평화가 오래오래 지속되길
모두가 내일은 덜 아프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