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을 놓치지 않고 식탁에 올려놓으면 나는 마치 주부 9단이 된듯한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이 좋아서 부지런을 떠는 겨울의 끝자락 2월
신기하게도 이 계절 노지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은 달다.
남해초, 포항초, 섬초라 불리는 바닷바람을 맞고자란 노지 시금치가 그러하고 누군가 밟은 듯 납작하게 자란 봄동이 그렇다.
찬바람을 견디느라 최대한 땅에 붙어 자란 모양이며 제멋대로 자란 잎들이 하우스에서 곱고 곧게 자란 아이들과는 태상부터가 다르다. 이들은 자신의 양분으로 스스로를 지켜낸 대견한 몸들이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내면이 더 깊은 것처럼 채소의 맛과 영양도 고난에 깊어지는 것 같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른 아침 봄동을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된장을 짜지 않게 적당히 풀어 심심하게 간을 하고 금세 익는 봄동이 너무 무르지 않게 후다닥 끓여 식탁 위에 올렸다.
아침의 찬기운이 따뜻한 한 그릇에 녹아 이내 사라진다. 이름마저 봄이 동하는 느낌이다.
설탕을 뿌렸나 싶게 달큼하다. 그냥 배춧국 보다 훨씬 단맛이 강하다. 봄동은 주로 겉절이로 먹는데 살짝 쪄서 나물로 먹거나 쌈채소로 먹어도 그만이다.
며칠 전 장 볼 계획 없이 남편과 빈손으로 나선 산책길에 만난 남해초를 모자에 담아오며 연신 웃었다.
남해 시금치는 요즘 하루 걸러 식탁에 올리는 식재료다. 짧은 한때가 가기 전에 아쉽지 않게 먹어 두어야 하니 눈에 보이면 부지런히 담는다.
흔히 시금치를 결석이 생긴다고 해서 많이 자주 먹는 것을 금기하는데 끓는 물에 데쳐 먹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칼슘과 결합해 체내에서 결석을 만드는 수산 성분은 끓는 물에 데치면 이내 사라진다. 하지만 시금치의 비타민은 물과 열에 약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빠르게 조리하는 것이 좋다.
뿌리 쪽이 달고 맛있기 때문에 뿌리 끝쪽만 살짝 잘라내고 지저분한 뿌리 부분은 칼로 긁어낸 다음 2~3등분으로 갈라 흙을 깨끗이 씻는다. 소금 한 스푼을 넣은 끓는 물에 30초만 살짝 데쳐 찬물에 얼른 헹구고 꼭 짜서 마늘, 소금, 양조간장, 들기름(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완성이다. 채소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젓가락도 노지 시금치 앞에서는 바삐 움직인다. 맛은 모두에게 정직하다.
이제는 사시사철 어느 때고 흔해진 채소지만 그래서 잠시 머물다가는 제철의 채소들이 더욱 기다려지고 귀하게 느껴진다. 자연에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된다.
그 마음이 보약이 된다.
2월의 식탁에는 파릇파릇한 봄이 언제나 먼저와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