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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Apr 21. 2022

두릅이 아닌 두릅

사월의 음나무 순 ‘개두릅’

봄 나들이 길, 우연히 들어선 산골장터에서 두릅을 만났다. 가지런히 플라스틱 투명 상자에 담긴 두릅이 아닌 날 것으로 진열된 두릅은 그 모양새부터 달랐다.

‘두릅은 두릅인데 다르네?’ 무얼 사야 할지 몰라 두릅의 이름을 물었지만 이름을 들어도 알리가 없다. 결국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을 보냈다.

엄마가 사라고 알려준 것은 ‘개두릅’

엄마는 늘 마트에서 파는 두릅은 아무 맛이 없다고 하셨다.    그 말을 흘려들은 나는 옛날보다 맛이 없어졌다는 말인가?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하신 말씀은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두릅의 이야기다. 개두릅은 진짜 두릅이 아니라는 뜻이다. ‘개’라는  말은 개살구처럼 모양이 비슷하지만 진짜는 아닌 것에 붙는 접두사다.

개두릅은 엄나무, 엉개 나무라고도 흔히 불리는 음나무의 새 순을 말한다.

두릅나무에서 나는 새 순이 진짜 두릅인 참두릅이다.

개두릅과 참두릅 외에 땅두릅도 있는데 땅두릅은 나무에서 자라는 참두릅, 개두릅과 달리 땅에서 자라는 풀이다. 풀이기 때문에 땅두릅은 참두릅, 개두릅보다 조금 일찍 봄을 맞이한다.


엄마가 사라고 알려주신 개두릅 한 바구니를 집으로 데려와 다듬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기쁨은 살림의 영역에도 존재한다.

개두릅의 앞머리 부분을 조금 잘라내면 분홍빛 겉잎이 떨어진다. 다른 봄나물에 비해 손질도 어렵지 않다.

찬물에 담가 여러 번 씻어내고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1분 정도 데쳐낸다. 크기가 제각각이라 큰 것부터, 단단한 머리부터 입수시켜 무르지 않게 적당한 식감으로 데친다. 데쳐낸 개두릅을 재빠르게 찬물로 헹구고 잎을 가볍게 짜면 완성이다.

초고추장에 찍어먹거나 들기름에 무쳐 먹는데 개두릅 향을 제대로 느껴보려고 초고추장만 꺼냈다.

한입 먹는 순간 엄마가 왜 마트의 참두릅이 맛이 없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개두릅은 온 힘을 다해 쓰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향을 뿜는다. 첫 입은 매우 쓴데 이상하게 자꾸만 끌리는 맛이다.

참두릅과 개두릅

마트에서 샀던 참두릅과는 식감부터가 다르다. 매끈하고 윤기가 난다. 어릴 때 내가 먹었던 것은 바로 이 개두릅이었다. 잊었던 맛의 기억이 혀끝에서 살아났다. 결혼 후 종종 사 먹었던 참두릅은 내게는 가짜 두릅이었던 것이다.

개두릅은 오랜 시간 내 눈에 띈 적이 없었는데 개두릅이 이처럼 보기 어려운 이유는 음나무가 커서 하우스 재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두릅에 비해 가격 또한 비싸다. 요즘은 자생하는 개두릅을 평지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해 차츰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지만 참두릅에 비해 여전히 재배가 까다로운 편이다.

장터에서 만난 개두릅은 모두 산에서 할머니께서 직접 가시에 찔려가며 따신 것이라고 했다. 약 보름 정도만 만날 수 있어 한 눈을 팔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만다.


개두릅은 귀한 만큼 그 약효 또한 뛰어나다. 간 기능을 회복시키고 고혈압과 당뇨에도 좋으며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피부질환이나 관절염에도 좋다고 한다. 그야말로 약이다.

봄나물은 봄기운을 가득 담아 봄의 생기로 내 안을 채워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무렵 아버지는 고향에 다녀오시며 개두릅을 한 아름 사 오시곤 하셨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봄나물이다. 개두릅 한아름을 엄마는 꽃다발보다 더 반가워하셨다. 무뚝뚝한 남편이 건네는 최고의 애정표현이었으리라

누군가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의 때를 놓치지 않고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사랑이 필요한 일이다. 그 사랑 또한 하나의 효능 아닐까?


꽃비가 내리는 봄날의 장터에서 햇볕에 그을린 주름진 손으로 건네는 한 움큼의 봄을 감사히 받아 든다.

마음을 부르게 하는 ‘봄’ 한 입

내년에도 이곳을, 이때를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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