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논술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막 잠을 깬 둘째가 형이 출발하기 직전에 나와서 아무 말 없이 형을 꼭 끌어안았다.
살다가 보면 잊혀지지 않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 장면이 내 기억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잘 보라는 말도 응원의 말도 없었지만 꼭 안아주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세 살 터울로 태어나 투닥거리기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나는 우아한 엄마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 보다 좋았던 순간들이 둘에겐 훨씬 많았다. 바닷가에서 모래를 파고 둘만의 성을 수없이 만들었고 함께 욕조에 들어가는 유일한 존재였고, 언제나 가장 빨리 화해하는 사이였다.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사이
추억도, 내게서 받은 사랑도, 상처도 비슷할 두 아이는 평생을 끈으로 이어져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설사 살아가며 그 끈이 느슨해진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당기는 순간 가장 기댈만한 언덕이 되어줄 거라 나는 믿는다. 그 믿음은 엄마인 내게 무엇보다 든든한 일이다.
초등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자기를 괴롭히던 한 아이를 혼내줬던 형은 어린 시절 둘째에게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전화에 첫째를 겉으로는 많이 혼냈지만 내 마음은 사실 첫째를 혼내지 않았었다. 형제는 늘 형제일 때 가장 용감했다.
둘째는 형이 비행기를 만들면 비행기를 따라 접었고 형이 책을 읽으면 책을 펼쳤다. 형은 뭐든지 잘한다고 말하던 둘째는 그때만큼 형을 추앙하지는 않지만 그때보다 더 깊어진 마음을 나는 그 포옹 하나로 느낄 수 있었다.
종종 부딪힌다 해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첫째는 둘째에게 학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문제집을 주문해 준다. 고 3의 시간을 기꺼이 쪼개어 준다. 자신이 힘들었던 것을 동생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하나뿐인 동생이 세상으로부터 늘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그 마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주 못 만난다고 해도 내 마음 한 곳 동생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 가장 가까운 벗은 동생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 내내 가장 큰 힘이 된다.
언젠가 인생이 많이 쓸쓸해질 때, 좀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날처럼 말없이 서로를 꼭 안아주길
늦은 밤 작은 침대에 둘이 누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많은 날들을 따뜻하게 간직하길
먼 훗날, 엄마 없는 어느 겨울날,
둘이서 내 이야기하며 첫눈처럼 웃어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