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고 무료했던 오월의 오후가 무너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한통의 짧은 전화로도 일상은 완전히 뒤틀릴 수 있다는 걸 전화를 받기 1분 전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 한통의 전화로 나의 수많은 고민들은 더 이상 고민거리가 되지 못했다.
어버이날이었다.
미리 뵙고 왔지만 며칠 전화도 없으신 엄마가 이상했다. 여느 날과 다른 그 이상함이 큰일이란 걸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톤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아빠가 집에서 넘어지셨고 골절이 생겼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고령의 환자에게 위험한 고관절 수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찾아본 검색 결과는 참담했다.
나이가 들면 암보다 무서운 질환이 골절이라고 한다.
고관절은 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관절로 골절 시 장기간 침상 안정이 불가피하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여러 가지 합병증을 불러오고 실제로 고관절 골절은 발생 후 1년 이내 사망률이 20~30%나 된다고 한다.
나는 울었다. 아빠의 골절을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던 내 무지함에 목놓아 울었다. 사고가 나기 전 짧은 외출에도 불안해 보였던 아빠의 걸음걸이를 나는 왜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낯선 아주머니 한분과 함께 계셨다. 그분은 간병인이셨다.
엄마 역시 연세가 있으셔서 밤에 병원에서 지내는 것은 무리셨고 자식들 걱정할까 알리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아빠는 온갖 검사를 거쳐 수술대에 누우셨다. 수술 전 하반신 마취를 시도해 보고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을 시 전신마취를 할 수 있고 그 경우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사망 기능성이 높다는 설명이었다.
엄마와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 처럼 간절한 기도는 그전에는 없었다.
수술에 들어가고 얼마 후 간호사 한분이 우리에게 하반신 마취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엄마와 나는 너무도 기뻤다. 마치 잃어버린 아빠를 되찾은 듯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간병인분을 보냈다.
잃어버릴뻔한 아빠를
잃어버릴지도 모를 아빠를
내가 붙잡아야 했다.
아직이 이별이 낯설다. 아직은 아빠와 나눌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렇게 나와 아빠의 50여 일간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훗날 내 삶을 되돌아볼 때 그 50여 일을 아빠와 보낸 건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나는 내게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그건 온전히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아빠가 내 손을 잡고 걸었던 그 걸음수만큼 내가 아빠 손을 잡아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