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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Sep 20. 2020

돌아온 목화솜 요

upcycling  새활용 이야기  

어린 시절 각방을 쓰기 전까지의 기억은 참으로 따뜻하다.

안방 가득 목화솜 요를 깔고 온 가족이 누워있으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주택의 웃풍이 심하던 그 시절 겨울, 아버지는 항상 이불속에 먼저 들어가 내가 누울 자리의 찬기운을 체온으로 데워 놓으시곤 하셨다.

이불 역시 묵직한 목화솜 이불이었는데 어린 나에게는 더욱 묵직한 느낌이었다. 묵직하지만 따뜻했고 어둠으로부터 보호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름이면 방 크기만한 커다란 줄무늬 모기장을 치고 목화솜 요를 깔고 누우면 또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목화솜 요는 신기하게도 겨울에는 따뜻했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 침대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가끔 요를 깔고 한방에서 자는 이벤트는 나의 요청으로 계속되었다.

그만큼 나는 요를 까는 것이 즐거웠다.


결혼을 하고도 한동안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친정엄마가 장만해 주신 목화솜 요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침대를 사용하고부터는 우리 역시 이벤트처럼 요를 깔았다. 내가 그랬듯 우리 아이들 역시 목화솜 요를 사랑했다.

하지만 세월의 힘으로 얇아진 목화솜 요는 언젠가부터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불장 속에 방치되었다.

목화솜 요는 솜틀기를 하면 다시 폭신해질 테지만 그것은 귀찮기도 하고 부피가 커지는 일이라 쉽게 실행하지는 못했다.


유난히 장마가 길고 외출조차 어려웠던 올여름 오랜만에  거실에 요를 깔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목화솜 요는 우리 집 명당이었다.

바닥 청소를 위해 소파에 올려둔 목화솜 요는 차츰 소파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소파 위 목화솜 요는 더없이 좋은 조합이 되었다.


얇아진 목화솜 요를 길게 반으로 접으면 소파에 딱 맞는 방석이 된다. 두겹이니 새 목화솜 요의 폭신함 못지않다.

깔끔함을 위해 쓰지 않는 광목 커튼으로 커버를 만들어 주니 소파 패드로 안성맞춤이었다. 무게감이 있으니 쉽게 밀리지도 않는다.

친정집에서 가져온 오래된 재봉틀

여름에는 쩍 붙는 느낌과 겨울에는 차가운 감촉을 가진 가죽소파는 낡은 목화솜 요 하나로 따뜻하고 개운하게 바뀌었다.

도톰한 소파 패드에 누우면 어린 시절 느꼈던 목화솜 요의  포근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스르륵 짧은 단잠에 빠지기 좋은 자리이다.


아이는 반으로 줄어든 요를 가뿐히 들어 창가 쪽에 깔고는 책을 읽는다.

햇살이 포근히 감싸고 가을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화솜 요가 나간 이불장은 여유로웠고 목화솜 요로 채워진 우리의 공간은 더없이 완벽했다.



목화요솜 - 목화꽃에서 얻은 솜
목화솜에서 추출한 천연 섬유로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천연 솜으로 알레르기나 아토피를 발생시키지 않아 피부가 민감한 사람이 사용하기 좋으며, 요커버의 내장 솜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출처 지식백과]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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