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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Oct 16. 2020

지속 가능한 집밥

모처럼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없는 시월의 오후는 찬 공기와 따뜻한 햇살이 공존했다. 이제 햇살도 찬 공기를 충분히 데우지는 못한다.

오늘의 집밥은 따끈한 누룽지 한 그릇이 딱이다.

전날 압력솥에 남은 밥으로 만들어둔 누룽지에 물만 부어 바글바글 끓여낸다. 구수하고 따뜻한 누룽지 한 그릇을 유기그릇에 예쁘게 담아 오징어 젓갈 한 가지만 꺼내 나만의 늦은 점심을 즐긴다.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먹는 뜨끈한 누룽지와 오징어 젓갈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누룽지의 고소함과 오징어의 쫀득한 식감, 짭조름함의 절묘한 조화는 한 그릇을 이내 비우게 했다. 온몸이 따뜻해졌다.

여기에 많은 반찬이 있었다면 이 둘의 조합을 이렇게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까?

잘 차려진 뷔페를 먹고 돌아오면 무엇이 가장 맛있었는지 정작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배만 불러 불편했던 기억들, 차라리 전문음식점에서 한 가지 요리를 공략할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음식은 오히려 먹는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언젠가부터 나는 반찬 가짓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따끈한 국에 반찬은 세네 가지 이상이 있어야 그럴듯한 밥상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곧 집밥에 대한 스트레스가 된다.

직장맘인 친구는 퇴근 후 짜증 내며 집밥을 하는 엄마보다 웃으며 피자를 시켜주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고 했다. 사랑과 반찬의 가짓수는 비례하지 않는다.

나는 간단한 요리 한두 가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만드는 엄마를 택했다.

특별히 밑반찬에 공들이지 않는다. 국이 없는 식단은 염분 섭취를 줄일 수 있어 좋다.

지속 가능한 집밥은 만드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가능하다.

몇 끼를 죽어라 차리고 지쳐 나머지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는 것보다 간단한 한 그릇으로 집밥을 지속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은 일이다.

간단한 레시피와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한두 가지 요리로 차려진 밥상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잔뜩 만들어두고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밑반찬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냉장고는 전보다 훨씬 단출해졌고 버려지는 식재료가 없어졌다.


그중 솥밥은 간소한  끼의 즐거움을 가져다준 고마운 메뉴다.

제철 식재료 한두 가지를 넣어 무쇠솥에 밥을 지으면 별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았다. 막 지은 밥을 양념간장에 쓱쓱 비벼먹으면 사춘기 아이들마저 엄지를 들어준다. 여기에 된장찌개나 계란 프라이 하나 더하면 완벽한 한 끼이다. 간단한 한 그릇 음식은 설거지마저 가볍다.

감자밥                                                            가지밥
    시래기밥                                                       표고버섯밥


주말은 남편이 고기를 굽거나 파스타를 함께 만든다.

손질이 힘든 식재료는 남편이 담당해 준다.

남편과 함께 만든 가을 꽃게탕
스테이크먹는 주말

집밥은 모두에게 즐거움이어야 한다.

365일 오늘 뭐 먹지가 주부만의 고민이 되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나는 가끔 아들들에게 주방을 내어준다.

간단한 재료 손질은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다 먹은 그릇은 각자 싱크대로 가져가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게 바로 애벌 헹굼하게 한다.

내 품을 떠나서도 언제나 사람 받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핫케이크를 만들던 아들 손 찰칵

스테인리스 팬을 예열해 계란 프라이를  만들 수 있는 남편을 사랑한다.

주방에 함께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주방이 언제나 가족 모두의 것이길 바란다.

집밥의 온기가 늘 식지 않기를 바란다.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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