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없는 시월의 오후는 찬 공기와 따뜻한 햇살이 공존했다. 이제 햇살도 찬 공기를 충분히 데우지는 못한다.
오늘의 집밥은 따끈한 누룽지 한 그릇이 딱이다.
전날 압력솥에 남은 밥으로 만들어둔 누룽지에 물만 부어 바글바글 끓여낸다. 구수하고 따뜻한 누룽지 한 그릇을 유기그릇에 예쁘게 담아 오징어 젓갈 한 가지만 꺼내 나만의 늦은 점심을 즐긴다.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먹는 뜨끈한 누룽지와 오징어 젓갈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누룽지의 고소함과 오징어의 쫀득한 식감, 짭조름함의 절묘한 조화는 한 그릇을 이내 비우게 했다. 온몸이 따뜻해졌다.
여기에 많은 반찬이 있었다면 이 둘의 조합을 이렇게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까?
잘 차려진 뷔페를 먹고 돌아오면 무엇이 가장 맛있었는지 정작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배만 불러 불편했던 기억들, 차라리 전문음식점에서 한 가지 요리를 공략할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음식은 오히려 먹는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언젠가부터 나는 반찬 가짓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따끈한 국에 반찬은 세네 가지 이상이 있어야 그럴듯한 밥상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곧 집밥에 대한 스트레스가 된다.
직장맘인 친구는 퇴근 후 짜증 내며 집밥을 하는 엄마보다 웃으며 피자를 시켜주는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고 했다. 사랑과 반찬의 가짓수는 비례하지 않는다.
나는 간단한 요리 한두 가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만드는 엄마를 택했다.
특별히 밑반찬에 공들이지 않는다. 국이 없는 식단은 염분 섭취를 줄일 수 있어 좋다.
지속 가능한 집밥은 만드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가능하다.
몇 끼를 죽어라 차리고 지쳐 나머지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는 것보다 간단한 한 그릇으로 집밥을 지속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은 일이다.
간단한 레시피와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한두 가지 요리로 차려진 밥상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잔뜩 만들어두고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밑반찬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냉장고는 전보다 훨씬 단출해졌고 버려지는 식재료가 없어졌다.
그중 솥밥은 간소한 한 끼의 즐거움을 가져다준 고마운 메뉴다.
제철 식재료 한두 가지를 넣어 무쇠솥에 밥을 지으면 별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았다. 막 지은 밥을 양념간장에 쓱쓱 비벼먹으면 사춘기 아이들마저 엄지를 들어준다. 여기에 된장찌개나 계란 프라이 하나 더하면 완벽한 한 끼이다. 간단한 한 그릇 음식은 설거지마저 가볍다.
주말은 남편이 고기를 굽거나 파스타를 함께 만든다.
손질이 힘든 식재료는 남편이 담당해 준다.
집밥은 모두에게 즐거움이어야 한다.
365일 오늘 뭐 먹지가 주부만의 고민이 되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나는 가끔 아들들에게 주방을 내어준다.
간단한 재료 손질은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다 먹은 그릇은 각자 싱크대로 가져가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게 바로 애벌 헹굼하게 한다.
내 품을 떠나서도 언제나 사람 받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팬을 예열해 계란 프라이를 만들 수 있는 남편을 사랑한다.
주방에 함께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주방이 언제나 가족 모두의 것이길 바란다.
집밥의 온기가 늘 식지 않기를 바란다.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