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6개월의 운명은?
패션 플랫폼에서 패션 플랫폼으로 이직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비슷한 브랜드를 팔지만 아예 문화가 정 반대 지점에 있는 회사
1년처럼 흘러가서 6개월 밖에 안 됐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정말 틈 없이 일했다. 딴짓할새 없이 매일 퇴근할 때마다 오늘 못다 한 일이 있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오늘 못한 일은 내일로 미루는 삶의 연속이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나 일이 끊임없이 있을 수가 있지?
6개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2026년 7월: 1개월-2개월 차 허니문 기간
일이 많지 않고 그나마 가장 평온했던 기간이었다. 덕분에 새로운 운동인 발레도 시작했었다. 평일에 퇴근하고 두 번쯤 운동을 갔으니까 워라밸 만족도가 최상인 시기였다.(지금은 체력, 마인드 이슈로 쉬고 있다.) 이직하기 전 회사와 이직한 회사와는 뭐가 다른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시기이다. 이 회사는 이런 툴을 쓰네. 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한다고?라는 놀라움이 극에 달했던 시기
2026년 8-9월: 고통 지수 극상
너무나도 다른 업무 스타일& 업무량으로 매일 아침 스트레스를 받았다. 장도 많이 꼬였고 하루하루가 곤욕스러웠다. 염증 지수가 높아져 있었고 덕분에? 건강보험공단 산정특례라는 것도 받아보았다. 맡은 일만 끝나면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매일같이 녹아들어 퇴근했다. 실제로 얼굴이 피부가 녹아져있었다. 일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큰 것, 모르는 것을 맡으니 개인적인 만족감이 가장 떨어졌다.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했는데 일이 줄어든다는 느낌이 없었다. 특히나 CMS 기능이 2010년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너무 구렸다. 한 땀 한 땀 개발자가 개발해 주는데 오류 투성이고 이런 것 때문에 11시까지 야근한다고? 할 정도로 현타가 많이 왔다.
2026년 12월, 6개월 차
12월 18일 오늘 딱 입사한 지 만 6개월이 되었다. 2-3번의 대형 캠페인을 겪었고 지금은 담당 연말 캠페인 1주 차 진행 중이다. 다행히 전사 거래액 목표치 대비 선방하고 있다. 차주 크리스마스 연휴 주간에 다소 무너지겠지만 일단 지금의 평온함을 즐기고 있다.
지난달 11월에는 우리 본부 실장이자 본부장님이 퇴사했다. 면접을 봤던 사람, 내가 속한 조직의 리더가 퇴사하는 건 기분이 좀 이상하다. 그리고 또 며칠 전에는 CEO도 교체되었다. (에? CEO가 교체된 회사는 또 처음 다녀보네) 새로운 본부장님, 실장님이 다른 조직에서 오셨고 어제는 전체 회식, 오늘 오전엔 새로운 실장님과 티타임을 했다.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닌데 조직 리더에게 내 소개를 하는 건 또 처음 있는 일이다. 아직도 처음 겪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 "저는 지그재그에서 9년을 일하다가 다른 일 하고 싶었던 시점에 어찌어찌해서 여차저차해서 여기 있게 되었어요..." 29cm에서 오신 분이라 또 여차저차하니 아는 사람이 겹친다. 한 업계에 10년 이상 있었고 업계 안에서 인재 풀이 돌다 보니 이제는 흔해진? 아이스 브레이킹 주제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또 6개월 차 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이 조직과 전 조직을 비교하고 개선했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1. 전 회사는 프로덕트/개발로부터 출발한 회사다 보니 프로덕트 적인 성장 시도를 한다. 그에 비해 지금 회사는 브랜드, 상품 위주로 확실히 많이 본다. 브랜드 몇 개가 참여했고, top sku가 얼마나 참여했고, top sku를 역제안해서 그중에 또 얼마가 참여했고 할인율이 어떻고... 훨씬 상품단위로 디테일하게 본다. 커머스가 가야 하는 방향 측면에서는 확실히 맞다고 생각하는데 실무자가 일하기에는 확실히 쪼들리는 부분이 많다. 이게 자동화되어 있으면 좋은데 그럴 수 없는 영역이 많고 훨씬 더 많은 디지털 막일이 수반된다.
플랫폼 MD 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여서 전에 있던 회사랑 사용하는 용어/빈도도 많이 다르다. 이제는 그래도 익숙해졌지만 낯선 표현 중에 하나는 '캐리오버 상품'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냥 뭐 잘 팔린 베스트 상품 진열하겠다는 거겠지 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니 그게 아니더라.
캐리오버: 운영·MD·생산을 위한 말로, 지난 시즌 → 이번 시즌으로 그대로 가져간 상품
“유행템이 아니라 계속 가져갈 기본 자산”의 개념
베스트: 잘 팔린 결과 설명
2. 생각보다 정보가 많이 닫혀있고 조직 간 소통이 어려운 구조다. 이전 회사에서는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했고 슬렉도 전 채널 다 열려있었다. 반면에 지금 회사는 정보가 굉장히 많이 닫혀있다. 비공개 채널도 너무 많고 문서도 대부분 권한이 막혀있다. 양날의 검 이겠지만 그래서 뭔가 주춤하게 된다. 채널도 여기저기를 오가야 하고 매번 문서 권한을 요청해야 한다. 정말 일하는 스타일/문화가 다르다. 뉴비 입장에서는 특히나 닫혀 있는 문화가 적응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3. 고작 6개월 다녔을 뿐인데 그 안에서도 변화가 많았다. 변화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탑다운으로 내려오니 리더급이 아닌 구성원 입장에서는 "웽??"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갑자기 분기별로 팝업을 한다고 하시고 갑자기 거래액 목표가 10배가 된다 거나... 하라니까 하는데 맥락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점점 더 의미충이 되어 가서 의미 없는 일을 하면 너무 현타가 온다. 엄격한 탑다운 조직에서 일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를 느끼고 있다. 이전 직장은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있었다. 바텀업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제안해야 했고 CEO의 의중을 잘 맞춰서 제안해야 했는데 여기는 그냥 뭐가 이거 저거 갑자기 내려온다.
이 세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전 직장/현직장 겹치는 동료끼리도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사람 느끼는 거 다 똑같구나. 그리고 이 부분들에게 티 타임 때 이야기했더니 특히 3번 관련해서는 계속 싱크를 맞춰갈 거라고 해주시긴 했다. 새로운 실장님은... 안광이 꽤나 반짝이는 분이다. 인상이 매우 좋으시고 새로운 영역을 알아가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워하시는 약간의 광기가 보인다.
어제는 괜찮았다가 또 오늘은 좌절하게 되는 나날의 연속이다. 어제는 칭찬 받았다가 오늘은 또 털리고. 성과가 잘 나올 땐 '아 그래도 이일 좀 더 해봐도 되는 건가봐?' 싶다가도 내 기획서가 허술하고 이 회사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나 싶을 땐 또 나락가 있다.
과연 내년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