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전시 플랜이 있는가
마케터의 일은 산업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커머스 분야로 한정해서 보았을 때, 큰 맥락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캠페인/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집행하고, 운영하면서 처음 세운 가설과 주요 지표가 목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리뷰하죠.
그래서 일까요 '이번에는 제발 추가 액션 없이도 무사히 끝나게 해 주세요.' 하고 매번 기도 메타를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가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초반에는 가설대로 흘러가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흔히 말하는 약발이 떨어져 버리죠. 특히 요즘 커머스 캠페인은 1주만 치고 빠지는 게 아니라 보통 2주, 길면 3주 이상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캠페인은 초반 4~5일 정도는 순조로워요. 쿠폰을 걸고 특가 상품을 구성하고 서비스 전반에 캠페인 무드를 입히면 수치가 튀어 오르니까요.
문제는 거의 예외 없이 1주 차 주말부터 시작됩니다. 주말을 지나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수치는 꺾여있어요.(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날씨라든가 월 초 효과라든가...) 이 패턴은 이미 수십 번을 경험했는데도, 막상 그 순간이 닥쳐 오면 대응이 늘 쉽지 않습니다. 이때는 단순히 결과 지표인 'GMV가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좀 더 자세히 뜯어보고 액션 플랜을 세워야 합니다.
유입, 캠페인 유입, PDP 진입률, 전환율, AOV, 쿠폰 사용률 등등 퍼널 단위로 분해해 봅니다. 그리고 서비스 전반의 주요 수치들이 목표 대비해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해 봅니다.
- GMV: 실제 수치 A, 목표 수치 B, 달성률 A/B
- 방문 세션: 실제 수치 A, 목표 수치 B, 달성률 A/B
- 구매 건수: 실제 수치 A, 목표 수치 B, 달성률 A/B
- AOV: 실제 수치 A, 목표 수치 B, 달성률 A/B
- 구매 전환율(CVR): 실제 수치 A, 목표 수치 B, 달성률 A/B
이렇게 나누어 보다 보면, 어떤 지표는 이미 목표를 달성하고 있고 어떤 지표는 명확하게 미달 상태라는 게 보입니다.
문제의 위치가 드러나는 순간인데요 문제를 정의하면, 다행히도 선택지는 좁아지게 됩니다. 지표를 분해하고 나면 그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유입이 문제인가, 전환이 문제인가? 유입을 늘려야 한다면, 우리가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노출 계좌는 무엇인가? 일정상 가능한 액션은 어디까지인가? 기존 소재를 확장할 것인지, 신규 소재를 제작할 것인가? 현 상황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액션을 일 단위로 실행하게 됩니다.
- e.g. 메인 배너에서 소구 되지 않는 추가 소재를 전면 팝업, 바텀 싯 팝업에 노출해 준다.
- e.g. 전환율에 이상이 없다면, 퍼포먼스 예산을 늘려서 추가 유입을 만들어 낸다.
모든 상황에서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보게 되는데요. 물론 어떤 시기에는 무엇을 해도 수치가 잘 안 움직일 때도 있어요. 그랬을 때는 외부적인 요인이 있을 확률도 있어요. 경쟁사가 좀 더 매력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거나,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는 시기일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액션을 정의하고 실행하고 다시 그 결과를 검증하는 게 캠페인 기획자의 역할입니다.
컨틴전시 플랜이란 미리 준비해 둔 완벽한 매뉴얼은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지표를 분해하고 정답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도 당장 할 수 있는 실행을 찾아내며, 내 가설이 틀렸을 때 기꺼이 원래의 경로를 이탈할 줄 아는 유연함 자체입니다.
시작은 누구든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 지쳤을 때 꺾일 때 어떻게 다시 그래프를 살려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어떤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어떤 실행을 할 건지는 나의 결정인 거죠.
2025년 한 해를 돌아보니, 나를 성장시킨 것은 '운 좋게 터진 대박 캠페인'보다 '꺾여가는 그래프를 붙잡고 씨름했던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 혹은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것들이 뒤섞여 근육이 되어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성과가 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령 실패했더라도 각 지점에서 배운 대응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시 지표를 뜯어보고 다음 스텝을 결정하는 것뿐이에요.
다가올 2026년에도 여전히 '기도 메타'를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수치가 꺾였을 때 다시 그래프를 살려낼 나만의 '우회로' 정도는 기꺼이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 될 때 '되는 것'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다시 나아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