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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아 Sep 28. 2015

너, 우리, 그리고 나?

'관계'에 대한 생각

00.

J, 외로움, 그리고 술.


내가 생각하는 것들과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시원스레 털어놓고 싶고, 마냥 어리광을 피우면서 나 너무 힘들다고, 나 지금 진짜 숨 막힌다고 칭얼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연락처를 펴보니 당장 연락할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허탈하고 어이없고, 구토감도 들더라. ─by J


 어느 날, 한밤중에 절친 J의 전화를 받았다. 가끔 우울하거나 짜증이 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나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처음이었던지라 당장 술 약속을 잡자는 J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뭐야 갑자기. 사춘기냐?" 하고 장난을 걸고, 또 J는 거기에 맞대응하며 길고 긴 전화를 했을 테고, 그러면 술 약속이라면 이제 저 뒤안길로 사라졌을 텐데. 결국 다음날 밤에, 나는 J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J는 대뜸 술을 시키며, 불과 사흘 전에 함께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적당히 10분 정도 나는 거기에 맞춰주다가, 답지 않게 빠르게 술을 삼키는 J를 말리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J는 갑자기 나에게 고맙다고 하더니 두 잔을 더 마시고는 그제야 입을 뗐다.


    "있잖아, 내가 요즘 일이 안 풀려서 누구한테 연락해서 어리광 좀 부릴까 했거든."

    "근데 왠지 맨날 너한테만 전화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다른 사람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연락처를 펴보니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당장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사람이 몇 명 없는 거야."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은 몇 백 씩이나 되는데, 너무너무 외로워."


 그렇게 말하는 J에게, 나는 다시 잔을 건넸다.



01.

쏟아지는 관계, 관계, 그리고 약속들.


 J의 말에 답을 해주지 못한 것은 그녀의 말이 틀렸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나에게 털어놓은 말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와서 나는 참 많은 새로운 것들, 그리고 중요한 것들을 마주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관계'가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때 까지 내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맺는 관계라면 가족, 친구, 사제관계 정도가 있는 반면에(아차, 연인도 있을지도), 대학에 오면 처음으로 사무적인 관계가 생기고, 또 친구도 그 친함에 따라 나뉘는 것을 깨달았다. 선후배라는 고리도 또 하나가 생겨나고. 가끔은 인터넷을 통해 한 번도 직접 마주하지 못한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기도 하니까 그 관계의 폭은 정말 무궁무진해졌다. 나와 J, 둘 모두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타입은 아니었던지라 정말 열심히 동아리, 학과 행사 등에 참가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연락처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빛, 밤 / 슈테판 성당 앞 / Amelia


연락처가  늘어날수록, 또 하나 늘어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약속'들이었다. 전에는 점심, 고등학교 때는 저녁까지도 친구들과 학교 식당에서 급식을 먹었고, 가는 곳마다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약속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같은 반이라는 말 아래에 우리는 하나로 묶여있었으니까, 관계를 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아도 4월 정도면 새로운 친구들과 절친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복을 벗으니 상황은 달라졌다.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식사 약속, 술 약속 등 '약속들'을 잡아야 했고, 교복을 입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다.



02.

공허함


새내기일 적에는 그냥 그 '바쁜 생활'이 참 좋았다. 끝없이 바쁜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보며 부러워했듯, 나도 그 일부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문득 카카오톡을 켰는데 수많은 단체 톡방 사이에서 나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참 적다는 생각이 들자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어떤 공허감이 들었다. 이 중 몇 명이 진짜 내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떠오르던 몇 달 전의 이야기. 친구들과 들뜬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대성리로 MT를 가고 있었는데, 날짜를 보니 그 날이 동생 생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떠올였던 기억이 난다.  하나뿐인 동생의 생일을 잊고 아침부터 놀리기만 하고 집을 나섰던 것이 기억이 나서, 그 날이 끝나기 몇 시간 전에서야 겨우 생일 축하한다고,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었던 기억.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섞이면서 문득,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속에,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 오사카 / Amelia



03.

그게 말로는 쉽지


우리는 참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예상컨대, 앞으로 우리는 더욱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내가 그 관계에 있어서, 참 많은 부분 미숙하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나에 대해, 나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얼마나 드러내야 하고, 또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아직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적정선'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를 위해 부던히도 움직인다. '나'를 위한 시간을, 공간을 모두 타인의 흔적으로 채워버리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그래서, '관계'에서 피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씩은,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아, 혼자 있고 싶다.' 그렇다고 그들과 완전히 관계를 끊어버리고 혼자 가만히 살 수는 없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참 멀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지금의 생기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볼까, 하면 앞으로 만나게 될 사업적 관계의 사람들이나 기타 등등, 그들을 생각하면 온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picture by Chris Sardegna


 나타인, 그리고 이 관계저 관계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렵다. 답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또 다시 너무나도 막막함을 느낀다. 그래서 '관계'를 잘 관리하는 방법이 쓰여있는 을 찾아본다. 그런 책들에는 대부분 그렇게 적혀있더라,

    ─관계 속에서 '나'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타자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관계들 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 그러니까, 그거 어떻게 하느냐고.

십 년이 다시 지나고 서른이 되면, 아니면 또 다시 스무 살을 더 먹어서 마흔이 되면, 좀 능숙해질까?

아니면 그냥 이런 고민들에 무뎌지거나 익숙해지기만 할까?

이게 다 '인생 공부'인 걸까?


참 어렵다.



Cover Picture by Harvey Enr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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