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자존감
너부터 말해봐. 몇십 년이 흐른 뒤에 만나도 단번에 너라는 걸 확인해 줄 수 있는, 너만의 비밀은 무엇이냐?
-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번엔 자존감이라고 많이들 말하는, 자아존중감에 대해서 말을 해줄게.
나는 꽤 자존감이 높은 편이야.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점을 맞닥뜨린 적이 거의 없었어.
덕분에 작년에 아무것도 못하겠고, 그야말로 무기력감의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나는 더욱 큰 상실감을 느꼈지. 밖에 나가기도 싫었어. 다들 일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 박혀있던 나를 비웃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거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주고받던 농담도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했고.
다만 덕분에,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할 수 있었어. 그리고 나만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 나는 이게 언젠가는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자존감은 말 그대로, 자아'존중'감이야. 자신을 존중하는 정도를 말하지.
그리고 자아존중감은 '앎'에서부터 시작해.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무엇을 아느냐고? 너에 대한 모든 것.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야.
자,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네가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려봐. 그리고 그 사람에게 네가 한 끼 저녁 식사를 대접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어때? 그냥 편의점에서 대충 삼각김밥 하나와 라면 하나를 주고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할 거니?
아마 아니겠지.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집 앞에 맛있고 분위기 좋은 식당이 생겼던데 거길 가볼까? 그런 분위기의 식당을 좋아할까? 등등 그 사람의 취향을 알기 위해 부던히 노력할거야. 그리고 식사 도중에 그 사람이 표정이 살짝만 일그러져도 뭔가 맘에 안 드나? 하고 고민을 할테지.
다른 예를 들어볼게.
내가 한동안 봄을 탈 때 들었던 노래 중에 만쥬한봉지라는 가수의 '사생활이 궁금해'라는 곡이 있었어. 가사 전체를 옮기기는 좀 귀찮으니 대략 설명을 하자면 '내'가 관심있는 '너'의 사생활을 알고 싶다는 거야. 잠버릇이 어떤지, 술버릇은 어떤지, 평소의 사소한 몸짓이나 말투를 더 알고싶다는 내용의 가사야.
자, 네 첫사랑을 떠올려봐. 아, 썸 탈 때가 생각이 난다면 그게 효과적일 것 같네.
네가 사랑을 했던 그 순간에, 너는 얼마나 질문쟁이가 되었니? 겉으로는 좀 덜 그러려고 했더라도, 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냈었잖아.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이걸 좋아할까? 저걸 좋아할까?
그리고 엄청난 관찰력을 뽐내기도 했지. 친구의 머리스타일이나 자주 가는 곳의 가구 배치가 바뀌는 것은 매번 눈치 못 채는 네가, 그 사람이 머리를 바꾸자마자 어! 하고 알아채고, 그 사람이 웃어보이면 이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네가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그래,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사랑할 때는 그렇게나 그 사람의 표정 하나, 손짓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전력을 다하잖니.
너 자신에게도 똑같은 거야. 너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네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등 너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이 꼭 필요해.
에이 그런 거 당연히 알지. 내가 나를 모르면 누가 아니? 라고 말할 거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보렴. 네가 뭘 좋아하는지 , 네가 뭘 싫어하는지, 네가 뭘 할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지, 네가 뭘 할 때 가장 좌절감을 느끼는지,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네가 누구와 있을 때 행복한지, 네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지, 어떤 환경이 널 안락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지, 어떤 환경이 널 불쾌하게 만드는지, 어떤 옷을 입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지.... 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겠니? 그리고 그게 어디선가 주입된 '좋음'이나 '싫음'이 아니라 진짜 네 안에서 좋다고, 싫다고 말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니?
생각보다 너는 참 바쁘게 살아왔단다. 적어도 내가 아는 너는 그래.
아주 어릴 때야, 놀이터에서 노는 게 가장 신나고 좋을 때고 심지어는 학습지 푸는 것에서 기쁨을 얻을 수도 있었던 그야말로 아주 어릴 때니까 넘기자. 다만 그 다음 십수년 간 너는 교과서와 문제집에 얼굴을 묻고 달려왔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었고, 그리고 곧바로 진로를 정해야한다는 생각에 치여서 또 정신이 없게 되어버렸지. 쉬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바로 그 때였고 말야.
그래, 일단 너에게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아니, 시간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전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지만.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단다, 하는 것이 환상인 걸 알게 되었음에도 이를 꿈꾸며 눈 앞의 책과 노트에 얼굴을 파묻었던 그때를 떠올려보렴. 살이 찌고, 체력이 바닥나고, 좋아하는 여행도 거의 가지 못하면서 하루 10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있던 그때를 말야.
그리고 또, 그 이후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말'을 하기도 했지.
친구들이 뭐가 좋더라 뭐가 별로더라 하는 그 '말'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않아도 계속해서 접하게 되는 각종 SNS의 사람들까지 너에게 뭐가 좋다, 뭐가 별로다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잖아. 트렌드나 유행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 아래 너는, 그게 진짜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지기도 했어.
네가 좋다고 생각한 것들 중에, 진짜로 네가 좋다고 직접 판단한 것은 얼마나 되니?혹시 그것들이 타인의 시선에 전염된 결과물은 아니니?
아, 그때의 날들을 후회하거나, 트렌드를 좇지 말라는 뜻은 아니야.
그때의 너는 살은 좀 쪘고 취미활동을 넓게 즐기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내가 맘에 들어하는 내 특징들도 그렇고,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된 것도 그때의 결과물 중 하나거든.
또 열심히 유행을 좇아보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 될 수 있기도 하고. 다만 진짜 네 생각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거야.
행복이라는 것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이라고 나와.
그래,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의 대다수가 기쁨, 환희, 만족감 같이 긍정적인 것들일때 행복하다고 느껴. 정확한 비율은 각자 다를지 몰라도. 내 경우엔 70% 정도 되는 거 같아.
그냥 단순하게 - 빈 유리병에 사탕과 초콜릿을 넣는다고 해보자.
유리병 가득 사탕이 들어있고, 초콜릿이 한두 개 들어있다고 해볼게. 그러면 너는 그 유리병을 뭐라고 부를까? "어, 사탕 병에 초콜릿도 들어가있네" 하겠지. 반대로 유리병 가득 초콜릿이 들어있고 사탕이 한두 개 들어있다면? 그걸 사탕 병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두 개가 섞여있다고 한다면? 뭐 그냥 단 것 항아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유리병이 어떤 이름을 갖느냐는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결정하지.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도 유리병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하루에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내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인생 전체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를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해. 어떤 일이 생겨서, 기분이 아주 안 좋게 되어버렸대도 그 외의 시간을 네가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채운다면, 결국에는 행복한 나날들이 완성되지 않겠어?
그런데 네가 무엇을 할 때, 누구와 있을 때 행복한지 모르고 계속 헤매게 된다면?
나중에 사회에 나가고 지금보다도 더 시간이 없게 되어버렸을 때, 그때 지금처럼 헤매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손에 든 것이 사탕인지 초콜릿인지, 아니면 쓰디쓴 환약일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모조리 유리병에 쓸어담으면 그게 사탕 유리병으로 완성될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제발, 많이 경험하고, 많이 보고, 듣고, 느낄 시간을 가지렴.
유리병을 가득 채울 사탕을 모으는 시간은 정말로 필요하단다.
오늘은 말이 좀 길어졌다만, 그만큼 너를 아는 것은 자존감, 행복과 관련되어 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거니까 꼭 이 문제에 집중해서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지렴.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이만 줄일게.
From, 네가 행복했으면 하는 현재의 내가
To,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1년 전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