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 <모모>를 읽고.
오늘 서울은 마치 연보라예요. 라일락의 향기를 닮았다 누군가는 말하리지만,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옅은 색의 연보라. 푸른 하늘 빛이랑, 그리고 무채색의 아파트 그 중간의 어떤, 연보라색. 연보라의 날씨 아래 사람들은 회색이에요.
거리마다의 회색은 참 바빠요. 침대가의 창을 열고 가만히 소리를 듣자면, 회색이 다른 회색에게 하는 소리, 어딘가로 향하는 다 닳아버린 구두굽, 바쁜 하루의 중간을 달리는 클랙션, 심지어는 은빛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마저도 바쁜 하루를 시작하지만 나는 해님이 저 꼭대기에 뜬 지금도 침대에 앉아 누더기 소녀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하는 누더기 소녀, 그녀 이름은 복숭아를 닮은 모모예요, 모모.
그녀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나봐요. 회빛의 사람들도 그녀의 곁에 가면 봄의 연두와, 여름의 주황빛으로 물들고 말거든. 그렇게 큰 일을 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앉아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어준 것 뿐. 하지만 그들은 그녀 곁에만 서면 온통 회빛이었던 머릿속이 잃었던 색채를 되찾곤 하더라구. 그 누구보다 싱그럽고, 선명한 색채를. 그래서 늙은 괴짜 거리청소부 부터, 아주 어린 동네의 골목대장 아이들까지 그녀를 좋아했대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끝없는 회빛의 향연, 그 끝에서 나도 어떤 이에게-그대에게, 봄과 여름의 따뜻한 색채를 담아주는 수채화같은 사람이고 싶어요. 다만 나는 너무나도 급한 마음에, 채 그대가 회빛의 스케치북 겉장을 벗기도 전에 이런저런 색을 드미는 탓에 내 곁에서는 오롯한 색을 발하는 그대를 보기가 그다지도 어렵다죠.
아아, 나도 이 회빛의 향연 속에서, 누군가에게 봄과, 여름의 한 줄기 햇살이고파요.
어떻게 하면 그 누더기 소녀와 같이 될 수 있을까.
-16년 3월 10일, 당신의 아멜리아가 썼습니다.
Cover Picture by Mari 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