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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Sep 19. 2023

첫 해외여행 1.

낯선 땅으로 떠날 결심

마지막 해외여행이 언제였드라.


머릿속 한구석에 뒤엉켜 있는 먼 나라 풍경들을 끄집어내어 본다.

씨엠립, 이스탄불, 루앙프라방,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네르하, 꼬르도바, 마르세이, 아비뇽, 니스, 베를린, 방콕, 끄라비, 호치민, 호이안, 푸꾸옥..


짧거나 길게 머물렀던 공간들이 저마다의 색채와 온도, 습도, 냄새와 향을 발산하며 아른거린다.

그 때 좋았었지. 젊고 에너지가 있었네.. 잠시 편안한 얼굴이 되어 감상에 빠져든다. 2013년부터 차곡차곡 담아온 이국의 풍경들. 마지막은 여행은 2019년 여름, 꼬맹이가 뱃속에 있었던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담당 의사의 걱정에도 꿋꿋이 밀고 나갔던 태국의 어느 섬 여행이었다.

여행자는 분명 나와 동거인뿐인데 보이지 않는 한 명을 더 의식해야 했던 신기한 여행.

그건 뭐랄까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한 아주 간략하고 짧은 예고편 같은 거였다.


지금껏 어디를 가든 여행지의 식탁에서 늘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맥주였다. 지역에 따라 맥주가 와인이 되기도 했지만 맥주는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앙코르왓이 보이는 강변의 잔디 위에서, 짙푸른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는 항구에서, 흙빛의 메콩강이 무서운 기세로 흐르는 루앙프라방의 어느 술집에서.. 스페인과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는 생맥주를 사전에서 찾아 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스 까냐 뽀르퐈보르!

라 프헤씨옹 씰부쁠레!


각국의 맥주 브랜드와 매우 친숙한 상태가 될 때 즈음 여행은 끝이 나곤 했다. 그러나 마지막 해외여행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한 명을 의식해 코 앞에서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를 못 본 척 해야 했다. 레저에도 제약이 따랐다. 물살을 가르며 바다 위를 달리는 스피드 보트는 포기해야 했다.    


아이가 없던 시절의 마지막 여행. 앞에 두고도 마실 수 없던 비어창.


주변에서는 태교여행이라 이름 붙였지만 그건 돈을 벌기 시작한 이래로 매해 되풀이해 온 연례행사, 나의 엄연한 여름휴가였다. 다음 해 달력이 나오면 빨간날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머리를 굴리는 것은 직장인들의 지긋지긋한 습관이자 연말을 보내는 쏠쏠한 재미 아닌가. 게다가 나는 몸이 혹사당할지언정 쉬는 날에도 집 밖 어딘가를 나갔다 와야 잘 쉬었다는 느낌을 받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하여간 그 때는 틈만 나면 나갈 궁리로 바빴다.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이역천리 낯선 이국의 땅을 떠돌던 나날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아이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한 명이 24시간 밀착케어가 필요한 신생아가 되어 인생에 걸어, 아니 미끄러져 들어왔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생활의 패턴과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일이었고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인데- 욕망의 체계까지 뒤흔들어놓는 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의 욕망의 단계도 덩달아 신생아 시절로 돌아 가버렸다. 메슬로우가 말하는 인간 욕구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밀려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뜨거운 물로 몸을 씻으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에 대해 생각했다. 몇 시간이라도 완전히 보장된 수면, 하루에 한번의 샤워, 갖춰진 끼니. 그것들은 하루 종일 신생아를 돌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해진 생명체를 수발들며 관찰하고 감탄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하루 하루 미묘하게 달라졌다. 붉은빛을 띄던 아이의 몸에 조금씩 살이 오르면서 살갗이 뽀얘졌다. 살이 없어 노안으로 보일 지경이었던 아이의 턱이 접히기 시작했다. 초점이 맞기 시작하며 눈빛에 힘이 생겼다. 아이의 위는 어찌나 작은지 하루에도 8번 이상 조금씩 먹었다. 다 먹은 후엔 포만감과 졸음에 축 늘어진 떡 같은 아기를 어깨에 얹고 등을 두드려주며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앙칼지게 울기 시작하면 식은 땀이 절로 났다. 미칠 듯이 단조롭지만 놀랍도록 역동적인 하루 하루였다. 어쩌다 보니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내딛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났다.


한 인간의 생존을 책임지라는 책무와 매 순간 주어지는 미션들, 아직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워보이는 생명체가 발산해내는 마력 덕분에 낯선 여행지를 떠돌던 나의 영혼은 우리의 서식지에 정착했다. 게다가 그 시절은 전세계를 뒤흔든 전염병으로 모두가 ‘사회적 거리’를 두던 시기였기에 육아로 인한 고립은 어쩌면 더 견딜만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해외여행병은 육아와 전염병이라는 타의로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이제 아이는 웬만한 음식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코로나감염증은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4년 전에 비하면 어른 다 됐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육아로부터의 해방은 실체가 보이지도 않는 머나먼 미래의 일.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그 어디에 비견할 수 없는 충만함을 가져다 주지만 그럼에도 육아가 중노동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한 단계를 넘어가면 다른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 무엇으로도 풀리지 않는 피로와 아이의 연이은 병치레로 심신이 닳아 가던 어느 봄날, 나는 결심했다. 올해엔 기어코 여행을 가야겠다고. 저 멀리 낯선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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