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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Jan 02. 2024

작가님(aka. 전 직장동료)과 아이와 함께 한 여행

아이를 한 명 키우는 데에는 좋은 어른들이 필요하다.

작가님 같은 어른이 내 주위에도 있었다면 나는 불안하고 겁 많은 어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한 강원도의 밤, 작가님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 주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이 이제야 생각나 여기에라도 남겨본다. 

작가님은 싱글이고 아이가 없다. 우리는 나의 현 직장이자 그녀의 전 직장에서 만난 사이다. 같은 직장을 다닐 때 우리는 종종 점심시간에 식사를 같이 한 후 한 테이블에서 각자의 ‘작업’을 했고, 그 이래로 우리는 서로를 작가님이라 부른다. 그녀의 퇴사 후 6개월도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동반한 채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있어서 그간의 시간동안 조금 어색할 수도 있었을 만남이 쉽게 풀어졌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런 힘이 있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 꽤 오랜 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아이는 유아차를 타고) 그 이후로 그녀와 아이는 나를 매개로 하지 않는 그들만의 관계를 만드는 것 같아 보였다. 회사 안에서 그녀와 내가 작업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면, 여기에 더해 회사 밖에서는 오히려 아이가 작가님과 나의 매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회사 밖에서의 첫 만남이 있고 일주일 후 우리(나와 아이, 작가님)는 강원도로 함께 여행을 떠났고, 2023년의 연말을 기념하여 또 한번 강원도로 떠났다.      


작가님과의 대화     


B: (나의 아들을 가리키며) 저런 섬세함이 좋아 보여요. 저도 불안이 많은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 나의 그런 성향이 좋은 면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A: 어느 아들 육아 관련 유투브를 봤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적 불안도가 높은 아들은 둔 엄마의 고민에 대한 상담이었는데 첫 번째, 엄마의 불안을 먼저 인식하고 다스릴 것. 두 번째. 가르치려 하지 말 것. 세 번째. 자신의 기질을 사랑할 것. 마지막 말에 저는 마음이 치유받는 것 같았는데 작가님이 바로 그런 말씀을 하셔서 떠올랐어요. 자신이 가질 기질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데에서부터 성장이 시작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B: 정말 그런 것 같아요.

A: 그런데 자신의 기질을 사랑하는 건, 그 기질을 섬세하게 바라봐주는 어른들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어른이 있었으면 저도 저의 기질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는 작가님을 좋아했다. 잠잘 때엔 언제나 내가 옆에 있어야 했던 아이가 한번은 작가님 옆에서 자겠다고 할 정도였다. 안전지상주의자인 아이가 작가님을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작가님은 상대방의 시계에 맞추어 기다려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날 때마다 아이에게 익숙해질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도 아이에게 성실히 반응했다. 뿐만 아니라 작가님은 아이의 에너지에 맞추어 줄 줄도 알았다.(아이를 키워보거나 옆에서 관찰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 것이다) 아이와 어쩌면 이렇게 잘 놀아주시냐고 감탄하는 내게 작가님은 자신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는 것이라며, 본인이 아이와 눈높이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의 에너지는 언제나 어른보다 한참 앞서 있기 마련이라 아이와 함께 노는 일은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님은 아이가 섬세하고 자상하다며 감탄했다.       


내적인 불안도가 높은 엄마로서 나는 나와 비슷한 아이의 기질이 사실 걱정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이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유독 겁이 많아 보일 때마다 답답하여 아이를 채근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작가님이 아이에게 감탄을 해주어 나는 비로소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끔은 나의 주변을 똑바로 보기 위해 타인의 시선이 필요할 때가 있나 보다. 이래서 아이의 성장에 부모나 보호자 외에도 많은 어른들이 필요한가 보다. 기질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기에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판단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님 같은 어른이 내 주위에도 있었다면 나는 불안하고 겁 많은 어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한 강원도의 밤, 작가님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 주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이 이제야 생각나 여기에라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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