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구가 점점 아파지고 있어?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아남는 방법

by 아멜리에최


언젠가부터 아이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외출 전) 불 다 껐어?

(손 씻을 때) 물 꺼야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지구가 아파진다고 했어.


아무래도 유치원에서 환경 교육을 받은 듯 싶다. 거리를 걷다가 쓰레기라도 발견하면 지구가 아파지는데, 라며 쓰레기를 버리고 간 사람을 나무라듯 말을 한다.


지구가 아파진다는 표현이 모호하고, 오독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나는 아이에게 이 표현의 의미를 보다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지구가 아파진다는 것은, 지구에 사는 생명들, 그러니까 식물, 동물이 아파지는 것이고, 그 식물과 동물을 먹고 사는 인간이 아파진다는 뜻이야.


아이의 다음과 같은 질문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 그러면 우리는 언제 아파져?


사실 조금씩 아파지고 있어.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렇잖아도 걱정이 많은 아이에게 차마 그 말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질문은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지구가 안 아파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


아이가 하는 잔소리로 미루어보았을 때, 유치원에서는 (30년 전에도 그랬듯)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전기와 물을 아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몇 가지를 더 보태었다.


일회용품과 비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다고 했다.

분리수거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걸을 수 있으면 걷는 게 좋다고 했다.

석유를 연료로 이동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이 공기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 화석연료와 태양열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의 걱정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지구가 점점 아파지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점점 아파지는 지구에서 점점 아파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일까.




어느 날은 지구가 안 아파지기 위해 무얼 해야 하냐는 아이의 반복되는 질문에 지친 나머지 산업이 바뀌어야 돼, 라고 무심히 대답해 버렸다. 거대산업이 화석연료를 주에너지원으로 계속 활용하는 한 개인이 아무리 물자를 아끼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텀블러를 들고다닌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없애주는 효과 외에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내심이 나와 버린 거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을 전환하려면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결국 정치인들에게 끈질기게 요구하여 그들이 법과 제도를 바꾸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투표를 잘해야 하고...


지구는 점점 아파지고 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찾지 못한다면 무력감에 빠지고 말 것이다. 모든 게 종말을 향하고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해도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실제로 2024년은 관측이 시작된 1800년대 이래로 가장 더운 해였고, 이 기록은 매년 갱신될 것이다. 기후과학자들은 이상기후 현상인 홍수와 가뭄, 산불에 더해 더위 그 자체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중요한 얘기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의 전환만 이루어지면 문제가 해결되는지, 지금의 산업은 자본가들의 탐욕만으로 지탱되고 있는지 질문이 남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소비를 즐긴다. 소비하는 행위를 여전히 좋아하므로 현재형으로 적어야겠다. 또 고백하자면 나는 소비중독이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예산의 범위를 넘어서는 물건을 참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상점에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는 일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입고 걸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독립 후 직접 꾸려가는 공간이 생기자 식기류, 침구류, 생필품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물건을 하나 살 때 정말 필요한지, 오랫동안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집에 있는 물건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하는 단계 없이 마음에 들면 카드를 꺼냈다. 카드값 걱정은 미래의 나에게 미뤄두고.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습관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온라인 쇼핑의 세계는 너무나 편리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절차조차 없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거나 숫자 여섯자리만 입력하면 화면 속 물건은 내 것이 되었다. 심지어 카드명세서를 받기 전까지는 돈을 쓴다는 자각도 들지 않는다. 실물을 보고 구매하지 않으니 실패도 잦았다. 부끄럽지만 배송받은 옷을 한번도 제대로 입지 않고 의류수거함에 밀어넣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렇게 쉽게 소비를 하고 쉽게 버리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이 밀려 들었다. 쓰레기를 만들어냈다는 죄책감. 그것도 돈을 낭비하여. 그러나 어김없이 일과 일 사이에 자라나 에이치엠 사이트에 들어가 신상품을 구경하고 그 중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의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일이 이어졌다. 세일기간이라도 찾아오면 예정에 없던 소비가 더욱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옷장을 보는데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언젠가 스치듯 보고 지나간 의류폐기물로 만들어진 쓰레기 산 이미지가 남아 있던 탓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입을 수 있는 충분한 옷이 이미 내게 있다. 더이상 의류를 구매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옷뿐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다면, 필요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미적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경험이라면 여분의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충분한 옷가지들을 두고 또 다른 옷을 살 때엔 새로운 물건이 내게 확실한 효용을 줄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옷을 보고 확인하는 것이 판단을 도울 것이다.


쇼핑중독을 과거형으로 쓴 까닭은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기 때문이다. 차마 부끄러워 어디에도 고백하지 못했던 중독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고 나니 지출하기 전에 고민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소비를 결정하기 전에 이런 질문들을 내게 던진다. 1) 내게 필요한가, 2) 아니면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인가? 3) 그렇다면 지금 꼭 사야 하는가?


또한 성분(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는 기본적으로 플라스틱이므로 잘 썩지 않는다)을 확인하고 되도록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물건을 구매하려고 한다. 필요한 물품을 체크하고 기억해두었다가 동네산책할을 할 때 상점에 들러 구매한다. 온라인 주문을 줄여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즐거움을 위한 소비를 멈추지는 못하겠지만, 가짜 욕망과 뒤이은 죄책감을 부추기는 산업과 자본에 놀아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외동이라 자원을 둘러싼 경쟁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도 신중한 소비를 하는 습관, 물건을 아끼며 오래 쓰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것이 지구와 인간을 아프지 않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해줘야겠다. 아이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습관적으로 하는 아이쇼핑쯤은 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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