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마음에 대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서 당신의 쉴 곳 없 네.
미성으로 유명했던 어느 가수가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사랑 노래 같은데, 내 안에 당신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이 가사에 대해서 말이다. 가사 전체를 두고 보면 조금 다른 의미로 읽히긴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저 한 문장의 화자에 대해서만큼은 이렇게 해석한다. 아, 에고가 강한 사람이구나.
타고난 성향인지, 길러진 성향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내가 느끼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게 중요했다. ~는 ~~해야 한다, 같은 명제들에서 이탈하기 일쑤였고 선생님들은 나의 일부(모범생 같은 외모. 어쩌면?)를 보고 자주 속아 넘어갔다. 나는 때때로 반항적이었고, 주로 경계의 바깥에 있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매우 무심했다.
게다가 멀티테스킹이 잘 안 되는 타고난 성격 덕분에 해야 할 일을 자주 까먹었고, 자주 어딘가에 부딪히고 뭔가를 엎지르고 깨뜨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의 무릎이나 손에는 상처가 가시지 않는데, 여전히 상처의 출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차분하고 심지가 굳어 보이는 여자아이들에게 끌리는 건 아마도 본능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의 챙김을 받는 게 좋았다. 언제나 나보다 나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왔다. 집에 놀러 왔다가 방을 정리해준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매일 저녁 전화해 준비물을 잘 챙겼는지 확인해준 친구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두서없이 쏟아내는 말들에 귀기울여 주는 친구,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자신의 것처럼 대해주는 친구, 언제나 먼저 식사를 제안해주는 친구, 뜸하다가도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돌봄을 받았다고 인지하게 된 것은 시간이 꽤나 흐른 뒤였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 역시 당시에는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이들을 삶의 어귀마다 나를 돌봐주었던 엄마라고 여기게 되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복수의 엄마들이 내게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모두 그 엄마들 덕분이었다. 내가 지금껏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낳아준 엄마로부터는 받을 수 없었던 다정함으로 나를 키웠던 사람들. 안전함 속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준 사람들.
다른 사람들로부터 챙김을 받아왔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돌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받는 일상을 살고 있다. 집에는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두 명의 인간과 하나의 달팽이가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를 돌보는 일은 이 중 가장 단순하다. 매일 지우개 찌꺼기 같은 똥을 치우고 분무기를 뿌려 달팽이가 좋아하는 습도를 만들어준다. 집에 있는 재료에 따라 배급되는 먹이가 달라지는데 주로 당근, 사과, 호박, 루꼴라, 상추, 양상추 등이다. 달팽이들도 각자가 선호하는 음식이 있는데 우리집 달팽이는 역시 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잎사귀 채소를 가장 좋아한다. 달팽이를 돌보느라 의식적으로 잎사귀 채소를 구입하게 되었다. 가끔 여행을 가거나 다른 일들에 밀려 먹이 주는 일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 생존에 큰 지장은 없는 모양이다. 지난해 여름, 아이 유치원에서 떠밀리듯 우리집에 오게 된 달팽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나뿐이지만 그러나 말거나 달팽이는 6개월 넘게 생존해 계시다.
내가 수행하는 돌봄 노동의 주요 대상은 아무래도 다섯살이 된 아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된 이후 나는 믿을 수 없이 급속도로 돌보는 자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깨는 신생아를 돌보느라 이미 잠이 모자란 와중에 새벽녘의 작은 칭얼거림에도 눈이 번쩍 떠지던 일은 내게도 신비한 체험이었다. 그때만해도 제때 식사를 제공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을 재워주는 게 돌봄의 전부였다. 지금 키우는 달팽이와도 비슷한 상태였달까.
아이가 달팽이에서 인간으로 진화 중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하던 일(밥 차리기, 목욕시키기, 여전히 재우기, 등하원 시키기 등등)에 더해 정서적 돌봄과 교육이 돌봄의 중요한 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헤아려주고,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리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을 방법을 알려주는 일.
요즘에는 하나만 낳아서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가 친구 역할까지 ‘잘’ 수행해야 아이의 사회성이 발달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단순히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 관계에서 발생할 법한 여러 불편한 상황과 갈등상황을 상정하면서 아이에게 공존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 입장이 아니다.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나는 다시 나를 교육시킨다. 원칙을 확인하고 기술적인 방법들을 머리에 담는다. 이렇게 아이를 돌보는 일이 나를 돌보는 일과 맞닿을 때가 있다.
한동안 동거인(남편)은 아이에게 갖는 관심의 절반만큼이라도 자신에게 가져보라고 나를 종용했었다. 처음엔 장난 같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 한 명을 낳았을 뿐인데 두 명(그것도 원치 않은)의 아이가 생긴 것 같은 기이한 상황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는 일을 분담할 파트너가 필요할 뿐인데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보채는 수염 난 아이라니.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런 동거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어른들에게도 사실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돌봄의 종류가 무척 다양할 수 있음을 이해하면서부터라고 할까. 영유아나 노약자,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돌봄을 필요로 한다. 넓은 의미에서 돌봄을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고 그것을 제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돌봄을 갈구한다.
독립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을 상정하는 전통적인 도덕론과 달리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돌봄윤리에서 인간은 의존적이고 관계적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행동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에 대해 그런 구분이 어려워진다. 자신과 타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밀한 관계 외에는 중요하지 않아, 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가벼운 돌봄과 진지한 돌봄, 그리고 사회적 돌봄까지 돌봄의 레이어는 두텁고 촘촘할수록 좋다는 것을.
예컨대 직장에서 나누는 가벼운 안부나 농담 같은 것.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문을 잡아주는 친절.
만석이 된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
연락이 뜸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
밥 먹자고 제안하는 것.
곁에 있어 주는 것. 응원한다고 말해주는 것.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눈물 흘리는 마음.
같이 분노하는 것.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일.
집회의 현장에서 핫팩과 담요를 나누고 버스를 대절해 추위를 피하도록 하는 마음 같은 것.
사소하고 가벼운 습관 같아 보이는 것들이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오랜 시간 후에 나마 깨닫는 데에는 그동안 내가 받아왔던 온기의 힘이 컸다.
사랑 없는 돌봄이 가능한지,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다 여기까지 왔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강도와 응축성을 지닌 애정을 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돌봄을 받아야 하고,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명제에서 시작된 질문이었다.
현재 나에게 남아 있는 가장 강렬한 사랑을 떠올려 본다. 사랑의 힘은 확장성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타인이 나의 아이를 대해주었으면 하는 방식으로 다른 아이를 대하는 것. 아이가 자랐으면 하는 방향으로 내가 살아가는 것. 아이가 살았으면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다 사랑에 기인해있음을, 결국 모든 돌봄에는 사랑이 관여되어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