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도, 육아도 좋아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by 아멜리에최

대학원에 다닐 때 해군장교가 신입생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적당히 학교 다니며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코스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이 학교 그 전공을 택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내밀한 정보가 없어서였겠지) 내 오만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환경에 그럭저럭 적응하는 것 같아 보였다. 오랜 ‘사회생활’에서 기인한 각 잡힌 태도와 적당히 눙치는 여유가 그의 생존전략인 듯 싶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회식자리’에서 그의 짬밥은 빛이 났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없는,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상대방(교수)을 치켜세우는 기술이 그에게 있었다. 교수님의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맥주병을 드는 손의 모양새부터가 달랐으니까. 그의 지도교수도 평상시 회식자리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사회물 먹은 접대를 받으며 꽤나 즐거워 보였다.


그날도 과도한 과제와 발표의 압박에 시달리던 우리는 창밖으로 비추는 뒷산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해군장교의 어머니뻘쯤 되었을 아주머니 두 분이 등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그 해군장교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 낮에 등산도 하고 부럽다.’ 연구실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누구라도 부러운 상황이긴 했지만 그 말에 담긴 뉘앙스를 감지한 나는 본능적으로 반발심이 들었다.



퇴근 후 집에서도,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일은 끊이지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입 아프다.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얼룩 없이 아이 옷을 입히는 사람들은 오염된 옷을 매번 바로바로 애벌빨래 한다는 얘기인지,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를 들여도 왜 집안일은 줄지 않는 느낌인지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오매불망 나만 바라보는 아이가 “엄마는 왜 이렇게 일이 많아?”라고 물었을까 싶다. 일상을 꾸린다는 게 이렇게 쉴 새 없는 노동을 하는 일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건지 싶다가도 아, 파트너가 있다면 보통은 둘이 나눠서 할 일이구나, 자각한다. 남편이란 작자는 백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자가 평일에 밤 아홉시 넘어서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일을 나가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육아와 집안일을 홀로 뒤집어쓰는 상황도 변함이 없으리라. 이럴 때면 자연스레 엄마가 떠오른다. 남편의 부재 속에서 바깥일에 집안일, 육아까지 해냈던 사람. 그러느라 지쳐서, 신경질이 나서, 죽을 것 같아서, 어쩌면 도망치고 싶어서 닮고 싶지 않은 엄마로 남겨진 사람.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도달한 곳이 이곳이라니. 소름이 끼친다.

그렇다고 배고픔을 해소할 수 있는 알약이 나온다면 그 알약을 먹을 의향이나 경제적 상황이 허락한다면 집안일을 대신 해줄 사람을 고용할 의향은 없다. 사실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즐기는 것 만큼 집안일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한다. 식재료를 씻고 자르고 요리하면서, 접시를 말끔하게 닦고 뽀득뽀득하게 마른 접시를 제자리에 정리하면서 삶을 내 손으로 꾸려가는 느낌이 좋다. 일상을 구성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자처하는 일이. 아이가 없어 여러모로 에너지가 많았던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취중요리였다. 금요일 저녁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완성된 음식을 동거인(aka.현 남편)과 나눠 먹는 저녁은 일주일 중 가장 느긋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화구가 하나밖에 없는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그 좁은 곳에서 갖가지 파스타를 만들고 카레를 만들고 생선구이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싶다. 물론 될 수 있는 한 미루거나 외주를 주고 싶은 종류의 집안일도 있다. 이를테면 하수구 청소 같은. 그러나 그마저도 쓱쓱 능숙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한켠에 있어 어떻게 하는 방식이 효율적일까 언제나 궁금하다.


아이가 돌을 조금 넘었을 때 아이와 단둘이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를 감행한 적이 있다. 가장 화려한 제주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5월 중순이었고, 날씨도, 풍경도, 그걸 느긋이 감상할 수 있는 여유도 다 좋았는데 며칠 지나자 기운이 빠지고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본능적으로 마트에 가 식재료를 사서 라구 파스타를 만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들어가야 했을 샐러리도, 이탈리안 파슬리도 들어가지 않은 소박한 파스타였지만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다시 영혼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까지는 즉석식품이나 식당밥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음식은 편리했지만 순간을 소중히 살아가는 감각을 앗아갔다. 그날 이후부터는 아이를 데리고 서귀포 오일장을 들락거리며 채소고 과일이고 물고기를 사서 열심히 집밥을 해 먹으며 제주도에서의 남은 생활을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집안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살면서도 직접 요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왠만하면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배달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에는 여력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서툴더라도, 힘들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일상을 꾸려가려는 태도는 어여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잘해주고 싶다. 스스로 돌보는 자가 돌봄을 받는 달까.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잘 돌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돌보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게 엄마와 나의 다른 점일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기를 쓰고 한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손 벌리고 싶지 않았던 엄마와 이모의 손을 빌려 하루의 저녁 시간을 얻어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시간은 한정적이라 모든 것의 진도는 더디게 나가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이도 집안도 제대로 돌볼 수가 없다. 엄마가 곁에 없는 시간이 더 많았더라도, 조금 덜 신경질적이고 활기찬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엄마를 사랑하는 일이 조금은 더 수월했을 것이다.


내가 육아나 집안일을 즐긴다고 해서 나의 정신적, 육체적 힘듦이 없어지거나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주말에도 이어지는 독박육아에 대해 아들과 데이트하고 행복했겠다는 말을 들으면 분노와 짜증이 솟구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주말이 행복한 건 사실이지만, 파트너 없이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해야 하는 반복되는 주말이 힘든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 요즘 나는 미치도록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다. 방해받지 않은 상태에서 원하는 만큼 책을 읽고 싶고 혼자 심심하게 영화관에 가서 다른 삶을 들여다본 후 조용히 곱씹고 싶다. 그런데 이제 완벽하게 혼자되기는 글렀다. 어떻게 해도 나의 뇌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 꼬맹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말 오랜만에 몰입했던 줌파 라히리의 소설 저지대를 읽으면서도 꼬맹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궁금해한다. 어떤 소년이 될까, 어떤 청년이 될까, 자신의 삶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갈까? 그러면서도 아이가 놀자고 할 때 책을 놓지 못하고 놀이 중간중간 책을 힐끗거린다.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다. 동시에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다. 아이가 한글을 깨쳐서 혼자 책을 읽게 되고, 도서관에 가서 각자의 책을 읽는 장면을 상상하면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싶다가도 하루가 다르게 소년이 되어가는 아이를 보면 아직은 엄마 껌딱지인 이 순간이 멈췄으면 한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아니었지만 엄마와 벌레를 결합한 기묘한 그 단어에 충격을 받았다. 맘충이라는 표현의 출현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어떤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전에도 된장녀, 김치녀, ~녀 등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이 있었지만 ‘엄마’를 건드린 단어는 없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란 성녀 또는 창녀로 구분되었다는 지적은 페미니즘의 날카로운 통찰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엄마는 성모 마리아처럼 성녀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감히 성적인 영역과 연계할 수 없는 성녀인 엄마(모든 아이들이 엄마의 섹스를 통해 탄생되었으나)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mother fucker나 puta madre (니에미)시팔 같은 욕설이 여러 문화권에서 최고 등급의 욕으로 간주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상적인 모성의 담지자로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언제든 제자리에 있는 안식처여야 했다.


그런데 201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엄마라는 정체성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상치 않은 변화였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각국으로 수출될 때 맘충이라는 표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들이 고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라는 정체성을 매개로 하는 혐오표현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분명 맘충이라는 단어가 출현한 배경에는 201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이미 시작되었던 저출생 현상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하나나 둘을 애지중지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아이가 부재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부모의 관심과 자원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왕처럼 자라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도나 포용력이 떨어졌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러한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된 현실에 더하여 된장녀를 시작으로 변함없이 시대를 관통해 온 여성에 대한 혐오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자원을 제공하는 남성을 등쳐먹고 노는 여자’에 대한 공격 말이다. 맘충의 본래적 의미가 아이를 매개로 특권을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무개념 엄마라고 한다면,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은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대낮에 등산길을 걷고 있는 아주머니를 본 해군장교의 머릿 속에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남편이 직장에서 고생하는 동안 한가하게 등산이나 하고 있네. 팔자 좋네. 그는 아마 자신이나 타인, 또는 어떤 공간을 제대로 돌보아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라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고, 자신을 제대로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노동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회사에서 나는 일부러 아이나 집안일 얘기를 꺼낸다. 아이가 예고 없이 아플 때의 어려움이나 퇴근 후 매일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고충, 외동이라 아이의 친구 역할까지 하느라 지치는 주말 이야기까지.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생각할 일도, 구체적으로 상상할 필요도 없던 이야기다. 아이가 있어도 그 이전과 똑같이 회사생활을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나의 상황은, 나의 조건은 크게 달라졌다. 예전처럼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할 수 없어졌다. 저녁에 열리는 회식자리에 참석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미리 휴가를 예고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근할 수 없는 날들도 있다. 근무 중에 유치원에 달려가야 하는 날도 있고 말이다.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아이를 소거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아이가 있다고 유세를 떨거나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하소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이가 점점 사라지는 세상에서 아이와 양육자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이것은 종국에는 돌봄을 받는 자와 돌보는 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결국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라구파스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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