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버린 골목을 추모하며
나는 9년 동안 외동이었지만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주위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인기가 많았다는 말이 아니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골목 문화 덕분이었다. 나는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태어나고 1여 년을 제외하면 줄곧 이 대도시에 살았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동네이자 20년 동안 살았던 동네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도, 지하철역도 없는, 말하자면 현대 도시의 관점에서는 낙후된 동네였다.
동네 이름에 오를 등(登)자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네는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된 양옥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소규모 다세대주택들이 마주 보고 있고 그 사이에 놓인 좁고 경사진 골목이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골목 바닥은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로 덮여 있었다. 봄이 되면 군데군데 금이 가거나 깨져 있는 틈에서 민들레나 이름 모를 풀들이 피어났다. 연락할 유일한 수단이 집 전화였던 시절에 우리는 약속을 잡을 필요조차 없었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있곤 했었으니까. 그게 아니면 집 앞으로 찾아가 불러내면 그만이었다.
흔한 모래놀이터 하나 없는 동네였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무줄 하나만 있어도, 돌멩이 하나만 있어도 신이 났다. 아니, 아무것 없이도 얼음땡, 술래잡기, 숨박꼭질을 하며 몇 시간이고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 골목에는 고등학생 오빠가 사는 집이 있었는데, 그 오빠가 그때쯤 고3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그 집 아주머니는 놀고 있는 우리를 향해 오빠 공부해야 하니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시곤 했다. 일순 조용해지는 것도 순간일 뿐 그런 잔소리가 우리의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연탄 부스러기가 뿌려지지 않은 골목이 그날의 썰매장이 되었다. 벙어리 장갑의 성긴 털실 사이로 얼음 알갱이들이 들어와 손이 아린 줄도 모르고 해가 질 때까지 하얀 언덕에서 뒹굴었다.
서로의 집에도 놀러 갔다. 엄마, 아빠가 직장에 간 사이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던 외할머니집 마당에서는 소꿉놀이를 했다. 옆집에 사는 자매언니네는 방 한 칸과 좁은 주방이 전부였는데 그곳에서 언니들은 오뚜기 스프를 끓여주었고 우리집에는 없는 보드게임을 알려줬다. 화장실을 가려면 집을 나와 옆에 위치한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골목의 가장 끝에 살던 언니네 이층집에서는 경양식 돈가스부터 짜파게티, 샌드위치 등등 여러 음식을 얻어 먹었다. 동갑인 혜영이네에 가면 티비로 만화를 많이 봤다. 혜영이 엄마는 바깥에서 일을 하시느라 집에 계시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안방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티비를 보는 혜영이네 아빠는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둘이 겨우 들어가는 혜영이 방에서 놀았다. 혜영이는 과자 한 봉지를 뜯으면 그릇 세 개에 나누어 담은 뒤 자신과 동생, 그리고 내 앞에 놓아주었다. 과자를 두고 경쟁할 사람이 없이 자랐던 나로서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집에서 다른 문화를 보고 경험했다.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던 다름이나 차이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아이들이 노는 자리에 어른이 낀 적은 없었다. 바깥에서든 집 안에서든 아이들끼리만 있는 일도 흔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 나는 외동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서울의 구불구불 오래된 골목과 언덕이 많은 동네에 산다. 재개발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모두의 당연한 욕망처럼 간주되어 버리는 시대에 나는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다. 그러나 골목은 예전의 그 골목이 아니다.
이 지역의 합계출산율은 서울의 평균 수치보다 낮다. 이 동네에는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아이들이 적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만 해도 총 8세대가 살고 있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우리집뿐이다. 간혹 옆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 오가는 걸 보지만 인연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단순히 아이들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골목은 아이들이 놀기에 위험한 곳이 되었다. 자동차가 쉴새 없이 다니고 낯선 어른들이 오가니 어떤 사고가 생길지 몰라 아이들만 골목에 내놓기에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니 조금씩 유치원 밖에서도 친구와 놀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이른 하원을 하는 친구들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시각에 놀이터에 가보면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있기 마련이다. 아이 유치원의 같은 반 아이들 엄마 몇몇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는 가끔 같이 놀자는 번개톡이 오기도 한다.
이제는 아이가 친구를 만나려면 양육자들끼리 약속을 잡아야 하고, 아이를 대동하여 자리에 나타나야 한다. 예전 같은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불가능해진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문자 I성향의 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기질적으로 힘이 든다. 게다가 주중에 처리한 많은 일들과 주말에도 처리를 기다리는 많은 일들 때문에 피로한 나는 적극적으로 아이의 만남을 주선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친구와 놀기 위해 학원을 간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학원이라는 말이다.
며칠 전에 아이가 놀이터에서 우연히 유치원의 같은 반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았다. 마침 사는 집의 위치도 매우 가까워 같은 골목까지 같이 걸어갔다. 그날의 경험이 무척 즐거웠던지 아이가 친구집에 가서 놀고 싶다고 한다. 집을 알고 있으니 찾아갈 수 있겠다고 한다. 30년 전 만해도 아이는 혼자 친구집에 찾아가 벨을 누르고 친구와 놀 수 있는지 물은 후 같이 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나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줄 날이 곧 올 것 같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그 골목의 풍경을 아이는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런 시대에 자라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줘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