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나게 일하고 싶다면, 몬카요의 와팡고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 34

by 아멜리 Amelie
Moncayo - Huapango (Alondra de la Parra, Orchestre de Paris)


2019년 6월 17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한 달 넘게 글을 못 썼다. 체력 하나 믿고 일을 좀 많이 벌였더니 글 쓸 시간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서너 달 운동을 다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운동을 못 나가는 바람에 두어 달 운동을 쉬어본 사람은 안다. 다시 운동화 끈을 묶으며 운동을 하러 나가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한 게 벌써 2주나 흘렀다. 써야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이자가 붙었다면 하루 한잔 커피값 정도는 솔찬히 벌었을 텐데 애석하게도 마음에 짐만 묵은 때처럼 쌓였다.


'써야지 써야지' 하는 생각 뒤에 꼬리처럼 붙은 고민이 하나 있다. '뭐 쓰지, 무슨 이야기하지, 어떤 음악을 그간 들었지......' 이 정도 생각에 다다르면 일상을 돌아보고 이야깃거리를 찾아 나설 지점까지 천천히 진입하게 된다. 뭘 먹고, 뭘 보고, 뭘 하며 살았는지, 그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었고, 무엇을 기대했는지 느린 걸음으로 훑어보게 된다. 4월 11일 이후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제일 많이 한 건 '일'이었다.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정이 촉박하니 진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던 행사가 하나 있었다. 다음 프로젝트 준비하며 노느니 그거 하면서 경험도 쌓고 매출도 올려보자며 대표에게 손들고 나서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 달은 족히 걸릴법한 일을 2주 만에 해치우느라 애가 탔다. 매일이 납기일이었고 일정이 어그러지면 행사 자체를 못할 수도 있어서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이메일과 전화와 메신저 대화에 지친 어느 날 퇴근길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무슨 배짱으로 이걸 한다고 했을까, 이 일을 하나 안 하나 월급은 같은데 뭘 자꾸 더 해보겠다는 욕심을 부릴까, 야근하고 스트레스받는 시간에 애나 좀 더 보고 더 놀아줄 것을. 에휴.



사실 깊은 속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보다 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더 다양한 일을 하면서 내공을 쌓고 싶어.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 지금 부족한 게 무엇이고 어떻게 그걸 메울 수 있을까. 내가 바랐고 원했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을까.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을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글을 읽고 쓰는 시간도, 걷고 감동하며 여행하는 시간도 모두 좋아한다. 그만큼 일하는 시간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육아휴직 중일 때 가장 좋아했던 일은 화장실 청소와 냉장고 정리 업무였다!) 일을 해서 내 힘으로 돈을 버는 것도 좋고,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는 것도 좋고, 새로운 일 앞에서 무모한 용기를 내고 깨지고 부딪히고 결국은 무언가 얻고 깨닫는 시간도 좋다.


무엇보다 내 작고 보잘것없는 능력과 에너지로 일의 마침표를 찍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일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레고를 쌓아 성을 만든 후 책상 위에 고이 간직하는 그 마음처럼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기분 좋은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 내가 가진, 넘쳐나는 나의 에너지를 보고 고마웠다는 말을 해 줄 때이다. 일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하는 순간순간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 어쩌면 나는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인간 자양강장제 같은, 살아 숨 쉬는 비타민 같은, 뭉친 어깨를 풀어주는 손 마사지 같은 존재로 일을 하는 구석구석에 좋은 기운을 뿌리고 다니고 싶은 내 마음을 읽은 누군가가 건네는 이 한마디는 월급보다 소중하고, 직급보다 힘 있고, 창창한 미래보다 희망차다.


16508143_1349887261748456_2008779969732218742_n.jpg?type=w1 2014년 8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일주일 전에 끝난 프로젝트가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일터가 아닌 병원에서 태어났다^^
KakaoTalk_20190617_113849029.jpg?type=w1 지난주 금요일, 방학이 길어 지겨운 아이가 자꾸 회사에 가지 말라고 졸라서 회사를 데려갔다. 나중에 아이는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이왕이면 좀 괜찮게 기억해주면 좋겠다.


얼마 전 출근길에 ‘잘 지내니’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발라드 노래를 하나 들었다. 옛 연인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은 가사였는데 출근길이어서 그랬을까 이십 대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들렸다. 지하철 소음을 벗 삼아 노래를 듣는데 오래전 그날 서울에서 일을 시작한 때가 떠올랐고 짧은 소회를 담을 글 하나를 써 내려갔다.




싱가포르도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발라드 노래 하나 끄집어 내어 듣다가 갑자기 십 년도 더 전에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2006년 4월에 시작한 첫 직장에서 나는 2년 계약직으로 한 달에 120만 원을 받았다. 방세 조금 내고, 밥값하고 나면 옷 하나 제대로 살 돈이 없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키위가 너무 먹고 싶어 슈퍼를 갔는데 칠레에서 온 건 천 원이었고 뉴질랜드에서 온 건 삼천 원이었다. 돈이 없으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나라의 농부가 키운, 왠지 멀리서 오느라 농약이 더 많이 묻어있을 것 같은 과일을 먹어야 하는구나 싶어 씁쓸했다. 사무실은 강남에 있고 집은 강북 저 위 재개발 지역 근처에 있었다. 2호선에서 6호선을 갈아타고 올라가면 사람들 옷가지와 행색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대학을 대구에서 졸업하고 돈도 없이 서울 생활을 시작한 탓에 어디 가면 술을 마시고 노는지, 어떻게 입고 다니면 이뻐 보이는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돈이 없어 징징거리면 엄마는 그 돈 받고 왜 서울 사냐며 당장 대구로 내려오라고 타박을 했다. 언젠가부터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돈 없다는 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재개발 구역에 묶였던 내가 살던 동네는 뭐든 저렴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동네 목욕탕에 가서 사우나를 하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질 때면 근처 대학교에 가서 산책을 했다. 학생카드를 찍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었는데 가끔 거기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고 토익 공부를 했다. 도서관을 나서면 정규직으로 어딘가 채용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약직 2년으로 근무하는 시간은 가끔 우울하고 곧잘 소심해졌다. 내가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한 과장이 나와 해외 출장을 가려고 했을 때 회사는 내가 계약직이어서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과장은 끝까지 싸워 나를 데려갔고 태어나 처음으로 상하이 동방명주를 볼 수 있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급여는 오르지 않았다. 명절마다 정규직이 커다란 종합선물세트를 받을 때 나는 치약 서너 개를 받아왔다. 집에 가져가기도 부끄러워 재개발 지역에 있는 자취방 화장실에 넣어두고 썼다. 정규직으로 취업한 동생은 늘 동기 모임을 했고, 나이와 배경과 성별이 다른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마이뉴스에서 홈플러스 부당 해고 노동자 아주머니들의 영상을 보며 주말 아침부터 펑펑 울기도 했다. 토익 점수는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고 계약직 2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나를 아껴주던 과장은 그 회사 정규직에 지원해보라고 했고, 난 스스로 개척해나갈 거라며 괜찮다고 했다. 어렸고 많이 겁나지 않았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월급 백이십만 원을 받는 계약직 직원이었다.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조금 아프지만 참고 버텼다. 무던히 열심히 살아내려 애썼다. 지금보다 잠도 덜 잤고, 공부도 더 했고, 생각도 더 열려 있었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더 나아졌을까.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면서 스물여섯 살의 철없지만 무던히 견딘 나를 만났다.


싱가포르에는 일하는 여성이 참으로 많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들을 사무실 주변 식당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다. 이들을 볼 때마다 느낀다. 오래오래 일하면서 즐거운 에너지 주변에 선사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멕시코 출신 지휘자 Alondra de la Parra(알론 드라 드 라 파라)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 그녀가 지휘하는 모습처럼 온 세상을 누비며 일을 하고 싶고, 멋진 이들과 미래를 만들어 보고 싶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 나가고 싶어진다. 능력도 있는데 좋은 기운이 넘치는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나 Alondra de la Parra(알론 드라 드 라 파라)를 찾는다. 어려운 일도 가볍게 풀어나갈 수 있는 마법 같은 용기를 마음으로 얻게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만 내가 한 만큼 모두 돌려받고 살 수도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꼭 무언가 돌려받으며 살기보다 내가 먼저 건넬 수 있고, 앞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는 머리와 마음을 가진 나이를 얻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좋아서 평생 하고 살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업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감각이 무뎌지고, 변하는 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한참 헤매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좌절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 그때 나는 어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의 다음 직업은 뭐가 되면 좋을까. 무얼 하며 좋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을까. 어떤 일로 돈을 벌면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할까.


아주 다양한 답안지가 떠오른다. 글을 읽어주고 같이 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아이가 커나가는 걸 지켜봐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창한 희망이 아닌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내는 힘을 곁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들이다.


이 일들을 먼 훗날 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봐 생각한다. 깨어있어야 한다. 변화에 민첩하진 않지만 변화 자체가 두렵지 않도록, 변하는 세상을 쫓아가느라 내 색깔이 지나치게 바래지지 않도록, 오만하지 않고 실패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도록 깨어있고 싶다.


저지르는 일들이 조금씩 작은 결과물을 안겨다 준다. 고맙고, 즐겁고, 살아있음에 행복하다. 아직도 여전히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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