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36
중학교를 다니던 무렵 이사를 하면서 아빠 사무실에 있던 사무용 책상을 방에 들였다. 누가 봐도 사무실에서 쓰는 무미건조하고 브랜드도 없는 아이보리색 책상이었지만 마음에 쏙 들었다. 널브러진 책 사이로 편지 한 장 쓸 공간은 충분히 나올 정도로, 책 서너 권 펼쳐 두고도 맘 편히 필기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책상이었다. 책상은 커다란 유리로 덮여 있었는데 그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유리 아래는 온갖 종류의 추억을 담는 공간이었다. 영화 티켓이나 영화 팸플릿을 넣어두기도 했고, 체험 학습을 다녀오며 받아온 천으로 만든 달력을 넣어두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문구를 직접 손으로 쓴 종이를 구겨 넣기도 했고, 가족사진 한 장을 살며시 넣어두기도 했다. 그 책상은 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가 그 방을 떠나는 순간까지 책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책상을 책으로 가득 메웠지만 엄마 눈에는 그저 잭 무덤이나 다름없어 보였는지 늘 책상 치우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엄마가 책상에 손끝 하나 건드린 날이면 어김없이 난 격앙된 목소리로 난리를 쳤다. 내 물건에, 내 책상에 그것도 내 책에 누가 손을 대다니! 그건 엄마 아니라 하느님이었어도 화가 날만한 이유였다. 그런 날이 있고 나면 엄마는 잔소리를 거두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 애써 내 방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고, 나에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책상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면 이름 모르는 동네 산등성이가 보였고, 등 뒤에는 참고서며 소설책들이 도서관을 흉내 내 듯 꽂혀 있었다. 책과 책 사이에는 동생이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며 선물한 계란처럼 생긴 돌멩이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좋아하는 영화 엽서 몇 장이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처럼 고요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상 서랍은 총 3개였는데 친구들과 주고받은 쪽지와 편지들이 가장 아래 칸을 차지했고, 그 위에는 학교 오가며 사다 모은 편지지와 엽서들이 가득했다. 맨 위 칸은 좋아하는 연필, 지우개, 스테이플러 같은 문구용품들, 어딘가에서 받고는 예쁘다고 생각했던 열쇠고리, 어딘지 모를 곳에서 주어온 돌멩이, 조개껍데기 같은 일종의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필요했다. 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오늘 해야 하는 공부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게 책을 정리했다.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 중 필요한 것을 앞으로 끌어오고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녀석들은 다시 켜켜이 쌓아 책상 구석에 밀어 넣었다. 연필이 쓰고 싶은 날은 뒤죽박죽 섞여 있는 서랍을 뒤져 칼을 찾아내 연필 깎기부터 해야 했다. 스윽스윽 연필을 예쁘게 깎는 날은 공부도 술술 잘 될 것 같은 날이었다. 볼펜을 쓰고 싶은 날은 볼펜 똥부터 깨끗하게 닦았다. 휴지 두어 장 펼쳐 놓고 볼펜이란 볼펜의 똥은 죄다 닦으며 그날 공부에 맞는 볼펜을 찾았다. 책을 이리저리 정리하다가 책 사이에서 뭔지 모를 종이 한 장이 구름 한 조각 하늘에서 하늘거리며 떨어지듯 방바닥에 떨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공부로 진입하기 아주 힘겨운 날이 된다. 보통 그런 종이에는 어디선가 내가 끼적인 글이나 친구랑 주고받은 대화가 담겨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써 내려갔는지 한참을 들여다보며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글이나 대화가 새로운 생각으로 이어지면 상상과 망상이 동반되고 상황은 걷잡을 수없이 심각해지고, 왜 책상 앞에 앉았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기도 했다. 즉 더 이상 공부하기는 틀렸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해야 할 공부가 많은 날은 적당히 알아서 상황을 수습하는데 공부 계획서에 조금이라도 자신 있는 과목이 있는 날은 공부를 적당히 하면 했지 상상을 적당히 하진 않았다.
사전 의식을 모두 치르고 본격적으로 공부에 들어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고 한들 교과서에 있는 모든 단어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제일 힘든 단어들은 모두 한자어였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도 생각나는 단어, ‘등고선’. 고등어도 아니고 등신도 아니고 등고선이 웬 말인가. 이런 단어 하나가 나오면 옥편을 다 찾아봐야 속이 후련했다. 같을 등, 높을 고, 줄 선, 같은 높이를 연결한 선. 이렇게 옥편으로 한자 하나하나 찾아 손가락 끝으로 짚고 내려가며 읽고 한자를 따라 써보고 참고서로 다시 한번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한자어는 지리 시간, 수학 시간, 국어 시간, 물리 시간 등 모든 시간에 존재했고, 내 옥편은 쉴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단어 찾고 뜻 이해하는 것이 정말 공부인지 생각해보면 이마저도 사진 의식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연필 깎고, 볼펜 똥 닦고 책상 위 책 정리하고 교과서 단어 찾느라 옥편 뒤지는 것까지 다 해야만 진짜 공부가 가능하니까.
이렇게 사진 의식을 다 치르고 나면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앉아 밤늦도록 책을 보고 또 봤다. 대단한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책 들여다보는 시간만큼은 수능 1등급 학생 못지않았던 시절이었다.
2019년 12월이 꼭 5일 남은 오늘, 25년 전 방안을 채운 책상과 공부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시간들을 하루하루 보내면서 다가오는 새 시간을 잘 채우기 위해 나만의 ‘사전 의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본격적(本格的, 제 궤도에 올라 제격에 맞게 적극적인)으로 새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나만의 사진 의식을 하면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살펴보고, 내 몸의 능력치를 돌아보고 마음 준비를 애써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식구들과 조화로운 일상 유지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을 정하고,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을 시간을 마련하고, 아이들 식사 메뉴를 다시 정리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점검하고 점심시간마다 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영어 공부를 위해 필요한 책과 동영상을 미리 챙겨 뒀다. 읽다 만 책들을 서둘러 읽어서 마무리했고, 내년에 또 어떤 영역의 글을 찾아 읽을지 찾아봤다. 1년 넘게 꾸준히 하던 테니스를 내년엔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작은 대회에 참여할 계획도 미리 세웠다. 아침에 옷 고르느라 5분 10분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옷장 정리도 다시 했고, 운동화도 말갛게 빨아 두고, 못 쓰고 안 쓰는 물건들을 비워 내기도 했다. 새해가 오기 직전에는 단정하게 머리 손질을 받고 새 날들을 맞이할 마음의 '최종'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의 연재도 마무리하려고 한다.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는 내가 감히 음악 이야기를 했던 시간들이었다. 지금까지 서른 다섯가지 음악을 같이 듣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겁도 없이 연재라는 것을 했다. 글을 쓸 때마다 뭘 쓸까 고민하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주섬주섬 꺼낸 내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기대해 주셔서 벅찬 감동으로 글을 쓰고 마음을 나눴다. 곧 새로운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 새 날이 와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내 마음 하나만은 고칠 이유도 없고 바꿀 생각도 없다.
세상 모든 곳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2019년 12월입니다.
그동안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글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