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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힘

우연함이 선사한 즐거움, 달리기 트랙

어린이 등교 프로젝트 <동네 달리기> 두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어린이 등교 프로젝트 <동네 달리기>를 시작한 지 5일이 지났다. 달리는 길과 풍경에 익숙해졌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린이 학교에서 집까지 총 5개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학교 주변에는 사람과 자전거가 너무 많아 달리기는 어렵고 노래를 선곡하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첫 번째 횡단보도가 나오면 신호등 기둥에 발을 기대어 종아리 근육을 약간 풀어주고 마스크를 빼서 팔에 끼우고 두 팔을 한번 휘휘 저어보고 제자리 걷기를 한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도움닫기 하듯 왼다리를 한걸음 뒤쪽으로 딛었다가 앞으로 나아가며 달리기 시작한다.


살짝 경사진 길을 올라가며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속도를 달리는 속도에 맞게 조절한다. 오르막 중간에 앵무새를 비롯해 각종 새를 파는 가게가 나온다. 내가 딛는 발소리에 새 가게에 모이를 먹으러 놀러 온 비둘기들이 동시다발로 날아오를 수 있어 잠깐 속도를 늦추고 조심해서 지난다.


오르막이 끝이 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롤러코스터처럼 길이 아래위로 구불구불하게 연결되어 재미있게 달릴 수 있는 코스다. 자동차가 달리는 길 양쪽 인도를 모두 달려본 결과 오른쪽의 주택 앞 인도가 달리기 수월하다는 점을 발견, 주요 이동코스로 지정했다.


마지막 언덕을 넘기 전 왼쪽에 운동장이 하나 있다. 싱가포르에는 구역별로 종합 운동장(Sports complex)이 있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수영장이 특화된 종합 운동장이어서 그곳에서 어린이 수영 강습을 받기도 했다. 지금 사는 동네 종합 운동장은 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외벽 넘어가 잘 보이지 않아 늘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여태껏 집에 가는 경로로 운동장 앞 인도를 활용했는데 그날은 운동장 뒷길로 넘어가 보고 싶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 정신이 발동했다고 말하고 싶다. 운동장 뒤를 향하는 언덕을 넘어가자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왔고, 올림픽 육상 경기할 때 봤던 달리기 트랙이 눈에 띄었다.


N극에 이끌리는 S극처럼 운동장 입구를 찾으며 한달음에 달려갔다. 코비드 19 때문에 실내 입장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체크인을 하고 운동장에 진입하는 순간, 여태껏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려 후들거리는 다리의 아픔 따윈 모두 잊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트랙, 그 위를 장식하고 있는 뭉게구름, 어느 곳 하나 빈 공간 없이 내리쬐는 적도의 햇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달리기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온몸으로 무언의 함성을 지르며 트랙을 달렸다. 트랙 한 바퀴를 달려보니 다섯 바퀴 정도는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지 않고 달렸다. 우레탄 재질의 트랙 바닥은 길바닥과 사뭇 다른 부드러움이 있었다. 대로에서 엄청 멀어진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많이 고요했다. 트랙을 걷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같이 달리는 이들이 있어 즐겁다는 생각도 했다.


운동장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나와 상관없을 거라 여긴 곳에서,

같은 길로만 다녔다면 결코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곳에서,

달리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고,

달리기 트랙은 동네 달리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게 되었다.


달리기2.jpg 운동장에 들어간 첫날 담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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